노래를 그만두다: '검정 봉다리'가 실어온 미래

이중생활자의 꿈

by 이중생활자 홍원표
삶의 지반이 무너진 자리


노래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 미래에서 노래를 지웠다.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베이는 계기가 있었으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준비 없이 이십 대 후반이라는 벼랑 끝에 선 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미래에 대한 걱정, 그 막연한 불안에 비하면 그때 나의 노래는 한없이 작고 초라했다. 무엇보다 생각없이 던지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줏대 없이 허물어지는 스스로를 목격하며 느낀 실망감이, 결국 나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고 말았다.


진짜 어려움은 그 직후에 찾아왔다. 지하수를 남김없이 길어 올린 땅 밑의 지반이 견디지 못하고 침하하듯, 이십 대의 시간을 온통 채웠던 노래를 걷어낸 내 삶은 근간부터 흔들거렸다.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제자리를 맴돌았고, 무언가를 밀어낼 동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동년배들이 이십 대에 쌓아 올린 결실을 꽃피우려 할 때, 나는 내가 일궈온 이십 대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 올려야 했다.


막막함은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보다 '시작한다고 해서 빛이 보일까'라는 회의가 나를 더욱 어둡게 침착시켰다. 친구와 기거하던 마포의 한 옥탑방 마당에서 매일 밤 도시의 먼 불빛을 바라보며, 과연 내가 세상에서 쓰임이 있는 사람일까 자문하곤 했다.


‘검정 봉다리’의 온기


그 무렵, 한 사람이 아슬아슬한 내 삶에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선배가 대표로 있는 가극단의 가수였다.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왕도처럼 여겨지던 유학의 길 대신, '의식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소신을 택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모두가 화려한 오페라의 아리아를 꿈꿀 때, 낮은 곳에서 울리는 노래의 가치를 믿던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단단했다.


우연히 우리 팀과 그쪽 극단이 합동 공연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 팀의 한 명과 그쪽 한 명이 서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을 맺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정작 마음을 나누게 된 건 우리 두 사람이었다.


가난한 자취생의 밥상을 걱정하던 그녀는 만날 때마다 검정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나타났다. 그 안에는 집에서 싸 온 쌀, 밑반찬, 간식거리가 담겨 있었다. 옥탑방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약속된 시간에 어김없이 검정 봉투를 흔들며 골목을 걸어 들어오던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내 아내가 되어 준 사람. 우리는 가끔 추억의 고유명사가 된 그때의 '검정 봉다리' 이야기를 하며 웃음 짓는다.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던 그 시절, ‘검정 봉다리’의 구호품을 건네던 그녀는 나에게 유일하게 손 내밀어 준 미래였으며, 이정표였다.


오십만 원의 확신


사랑은 사람을 염치 있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언제까지나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노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도구는 노래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길은 통기타 라이브 가수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심야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자동차가 필수였으나, 나는 중고차를 살 여유조차 없었다. 오십만 원짜리 폐차 직전의 낡은 중고차를 겨우 찾았지만, 당시의 나에겐 그것도 쉬운 금액이 아니었다.


그때, 주저하던 나에게 그녀가 무언가를 내놓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푼 두 푼 모은 소중한 돈 오십만 원이었다. 삶의 의지를 다시 세워보려 발버둥 치는 연인을 위해, 그녀는 선뜻 자신의 확신을 내어 준 것이다.


“나 남자친구 차 사준 여자야. 앞으로 평생 나한테 잘해야 돼.”


농담처럼 던진 그 말속에 담긴 무게를 나는 안다. 지금도 나는 아내에게 묻곤 한다. 미래가 안 보이는 백수에게 도대체 뭘 믿고 그 돈을 내줬냐고. 아내는 대답 대신 씽긋 웃곤 한다. 만약 그때, 그녀라는 온기가 내게 없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새벽을 가르는 노래, 그리고 결단


나는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오십만 원짜리 낡은 차를 몰고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노래했다. 부족한 기타 실력에 손가락 관절이 퉁퉁 부었고, 수백 곡의 레퍼토리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호텔 로비에서 술집까지, 취객들의 무례함에 가슴이 무너지는 밤도 많았다.


하지만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내 힘으로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디디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했고, 그것이 나를 지탱했다. 무엇보다 나를 믿어준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돌아오는 길,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미래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녀 앞에 더 당당하고 탄탄한 삶을 가진 사람으로 서고 싶었다. 통기타 가수의 삶은 여전히 위태로운 줄타기 같았다. 이미 마음속에서 떠나보낸 노래를 이런 방식으로 질질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비로소 내 이십 대를 관통했던 '노래'가 환상이었음을 인정했다. 아내가 내게 보여준 그 단단한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이제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드디어 취업을 결심했다. 그것은 노래를 포기하는 패배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할 더 큰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