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의 밤, 노래가 멈춘 시간

이중생활자의 꿈

낯선 공기, 변해버린 시선


제대 후 나는 조국과 청춘에 복귀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그곳의 공기는 예전과 달랐다.


한때 이십여 명에 달하며 북적였던 단원들은 이제 단 네 명뿐이었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던 막내였던 나는, 어느새 팀을 이끌어야 하는 최고참 선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조국과 청춘은 다섯 번째 음반을 내며 민중가요계에 파격적인 시도를 던졌다. 바로 '록(Rock)' 스타일의 도입이었다. 강렬한 비트와 터져 나오는 기타 사운드는 조국과 청춘이 지향하던 ‘힘찬 전진’의 이미지와 잘 어우러졌고, 현장의 학우들은 이 새로운 에너지에 열광했다.


그러나 변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민중가요의 정통성을 고집하던 이들에게 우리의 변신은 ‘혁신’이 아니라 ‘변절’이었다. ‘조국과 청춘이 변했다’, ‘대중성에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가득했다. 일반 학우들은 여전히 우리를 지지했지만, 학생운동의 노선을 결정하는 간부들과 소위 ‘등급’ 높은 노래꾼들은 우리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으려 애썼다. 여전히 열심히 연습했고, 노래를 만들었으며, 우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했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박수는 여전히 뜨거웠기에, 나는 그 열기 속에 숨어 다가올 폭풍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관악산의 어둠, 숨 죽인 발걸음


운명의 날은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찾아왔다. 서울대학교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이었기에 공권력은 학교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과 시민은 그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하나둘 교정 안으로 진입했다.


집회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우리도 역시 그곳에 가야만 했다. 정문은 이미 경찰들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우리는 야음을 틈타 관악산을 넘어 학교로 잠입하기로 했다. 최고참인 내가 앞장을 서고 세 명의 후배가 내 뒤를 따랐다. 숲은 어두워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저 산등성이 가까이 올라가면 학교의 불빛이 보이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로 계속 산자락을 올랐다.


한참을 어두운 산길과 싸우며 걷던 중, 저 멀리 숲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우리 같이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경찰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후배들을 숲 그늘에 숨겨둔 채 혼자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 숲을 벗어나 무릎 높이의 풀들이 자란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지르던 찰나, 플래시 불빛이 번쩍거렸다.


“누구야!”


벼락같은 고함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엎드릴 여유조차 없어 들판 한가운데 그대로 드러누웠다. 두 개의 광선이 어둠을 가르며 내가 누운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들릴까 봐 마른침을 삼키며 가슴을 압박했다. 급기야 불빛이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도대체 경찰들이 날 본 건지 못 본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불빛이 꺼졌고, 경찰들의 대화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네. 갑시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멀어지는 줄 알았던 발소리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플래시를 끄고 돌아가는 척하며 나를 안심시킨 뒤, 발소리를 죽여 다가오고 있었다.


"뛰어!" — 숲 속의 질주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나 혼자라면 잡혀도 그만이었지만, 숲 속에 숨어 나만 바라보고 있을 후배들이 떠올랐다. 그들만은 지켜야 했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뛰어!”


그 비명 같은 외침을 신호로 나는 경찰의 반대 방향인 산 정상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십여 미터 뒤에 있던 후배들은 내 앞에서 뛰었다. 뒤쪽에서 고함과 발소리가 따라붙었지만, 우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뺨을 할퀴고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멈출 수 없었다. 이십여 분을 정신없이 달린 끝에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산등성이에서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낙오자는 없었다. 한 후배는 안경이 나뭇가지에 걸려 날아간 줄도 모르고 뛰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 긴박했던 순간,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우리가 이토록 처절하게 산을 넘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에 우리를 기다리는 '동지'들이 있고,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아픈 말, 무너져 내린 세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도착한 서울대 노천극장은 이미 만여 명의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간신히 진행본부에 도착 보고를 마친 뒤, 노천극장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옷가지, 엉망이 된 신발. 하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이 험난한 과정을 뚫고 이곳에 왔다는 자부심이 우리를 버티게 했다.


그때였다. 우리 주변에 모여 앉아 있던 타 대학교 노래패 무리의 대화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조국과 청춘 들어왔대.”

“그래? 야, 그 XX들 왜 들어왔대?”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반가움이나 연대가 아니었다.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며 관악산의 숲을 달려와 우리가 함께 하려 했던 이들은 우리를 '그 XX들'이라 부르며 냉소하고 있었다.


심장이 발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십 대의 전부를 바쳐 노래했던 시간들, 나를 위한 시간을 모두 뒤로 하고 배고픔을 견디며 지켜왔던 가치들이 단 한 마디의 냉소에 의해 쓰레기더미처럼 버려지는 기분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내 발걸음이 한없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아득한 정신을 붙들고 무대 위로 향했다.


“조국과 청춘을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호명과 함께 노천극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평소라면 전율했을 그 환호가 그날은 공허할 뿐이었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내 앞의 이들이 진정 나의 동지인지 알 수 없었다. 입으로는 노래를 하고 있었지만,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먼 훗날, 한 공연장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마주했다. 그는 오래전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우리에게 날 선 비난을 던졌던 그 노래패 무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비록 그 거친 말을 직접 내뱉은 당사자는 아니었으나, 곁에 있던 이로서 늘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지금도 그때의 일을 너무 죄송해하고 있습니다."


이미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시간이었다. 내게는 세상을 무너뜨릴 것 같았던 그날의 감정도 이제는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바래져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서울대의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폭풍은 그치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던 나의 길, 나의 삶. 처음으로 노래가 싫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관악산의 밤보다 더 어두운 마음으로 결심했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사랑했던 노래를, 이제는 그만 떠나보내기로.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