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성공한 사업가가 실력은 좋지만 쉬면서 띄엄띄엄 일하는 멕시코 어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어업 사업으로 성공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성공한 뒤에는 은퇴해서 한가하게 멕시코 시골에서 낚시하고 가족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낮잠도 실컷 잘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자 어부는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소!’라며 그 사업 제안을 거절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교훈은 사업가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여유롭게 사는 어부 편이다. 워커홀릭 시절 나는 이 교훈에 공감 못하고 사업가 편을 들었다.
그런데 마흔에 은퇴하고 이민와서 여유롭게 지내다 보니 내 눈에 슬슬 제3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내 인생은
일 중독 사업가와 대책 없는 어부의 삶
중간쯤 어딘가에 놓여 있다.
워라밸이 쉬운 캐나다를 겪으면서 깨달은 바다. 한국보다 더 느린데 더 안정적이고 잘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덕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의 놀람과 의문으로 시작했던 내 이민생활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의 깨달음과 감탄으로 답을 얻었다.
태어난 나라를 선택할 수는 없었으나 내 인생이 중후반부를 어디서 보낼지는 선택 가능한 세상이 됐다. 한국의 국력이 늘었지만 다양한 이유로 한국과는 또다른 사회를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내가 얻은 답이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