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좀 까다롭더라
내 삶이란 참 손이 많이 가는 까탈스러운 녀석이다. 혼자 살게 되면서 여실히 느낀다. 날이 밝으면 침대에서 내려오고 때 되면 밥 차려먹고 잘밤에 적당히 놀다가 잘 자는 것. 오늘은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내일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하나하나는 굉장히 사소한 것들 일지라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꽤 수고로운 내 일상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왠지 이런 것들을 적재적소에 적시에 처리해 나가는 내 모습을 보면 마냥 어린애일 줄만 알았던 이 녀석도 어느샌가 커서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어엿한 어른이란 것이 별건가, 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의 손길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때를 맞이하면 그 나름대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엄마의 밥 냄새 없이도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빠의 장난 섞인 간지럼 없이도 혼자서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었을 때, 할머니의 애정 어린 성화 없이도 배가 고프면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눈에 불을 켜고 간식거리를 찾아다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날까지 계속 사람 손을 타게 만들어진 듯하다. 생활을 유지시키는 도움의 손길 대신 이제는 다른 손길이 필요해졌다. 밥 먹으라고 잠을 깨우는 손길이 아닌 같이 야식 먹자면서 달랑달랑 떡볶이 봉지를 끼고 들어오는 손목이 있다. 일어나라고 기지개 키우는 손길이 아닌 잠 못 이루는 밤 어깨 한 번 토닥이는 손바닥이 있다. 간식 챙겨주는 손길이 아닌 너 혼자 먹지 말고 나도 한 입 먹자며 타박하는 작은 주먹이 있다. 어떤 모양으로 찾아오든 손길은 늘 반갑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간다.
스스로 사람 손을 탄다는 사실이 못내 버겁고 자존심도 상해서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부단히도 애썼다. 언젠가 혼자서 살아가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자 했다. 다양한 일을 해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어차피 활용을 안 해 금세 까먹을 ‘자취 꿀팁’ 같은 것들을 주워 담아 사진첩에 고이 보관해두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도 주워듣고 읽고 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들의 결론은 늘 한 방향을 가리켰다. “불현듯 외로움과 적막이 찾아온다.” 삶의 많은 순간은 혼자 견뎌내야 하겠지만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로 사람을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듯하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적막을 대하는 방법을 아직 잘은 모르겠다. 적막은 갑자기 찾아와서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골치 아픈 불청객을 퇴치하는 데에는 사람 손이 제격이지만 늘 그들의 손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일단은 이 성가신 친구와 친한 척을 해보려 한다. 어, 왔어? 앉아, 앉아. 편하게 있어. 적막이 날 대하듯 그렇게 나도 적막을 대할 것이다. 내가 적막이 지겨워지면 사람을 찾아 떠나듯이, 적막도 내가 지겨워지면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일단 적막이라는 친구를 잘 어르고 달래서,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가 되는 것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