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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Apr 19. 2020

1인분은 없다.

남은 유부초밥은 미래의 나에게 양보해

  사람이 언제 외로움을 느끼는줄 아는가. 이불 위에 길게 앉아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릴때? 아니! 아침에 지각하기 직전까지 아무도 안 깨워줄 때? 그것도 아니! 바로 깻잎장아찌 먹는데 앞에서 아무도 깻잎 안 잡아줄 때. 혹은 음식이 너무 많이 됐는데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남은 음식을 냉동실에 넣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때이다. 음식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 나는 늘 내가 남아있고 싶다. 하지만 혼자서는 음식을 이길 수 없는 날도 있는 것 같다.








  혼자 밥 먹는 상황은 이미 익숙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밥은 새롭게 떠오르는 식문화 트렌드정도로 여겨졌는데 이젠 누구든 혼자 밥 먹는 풍경이 그렇게 생경하지가 않다. 늘 남들과 함께 먹어버릇 해서 그렇지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음식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도가 관여되겠지만 수저를 든 순간부터 먹기란 오롯이 홀로 골몰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아예 혼자 밥을 준비하고 상을 펴서 먹는다면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신경쓸 필요 없이 내가 주체가 되어 계획을 세워 메뉴를 고르고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단 편리하고 이 과정에서 묘한 주도성을 느낄 수 있다. A부터 Z까지 내가 결정하고 수행하고 마무리한다니,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는 영락없는 어른이잖아? 언제나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먹기 싫은 것은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편식도 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쏙쏙 골라 맛있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스스로 준비하는 식사시간은 매일매일이 축제고 행복이다. 요리하는 즐거움은 놀이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성가시고 귀찮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피곤한 날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어.”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리고 밥을 차리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냉장고속 재료들과 시간을 열심히 곱하고 나누면서 머릿속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려야 한다. 게다가 제아무리 매일 혼자서 잘도 파티를 열고 신나게 논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같이 떠들면서 요리하고 먹어보고 웃을 사람이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혼자 먹고 남은 음식을 마주보는 것도 고충이다. 어떤 메뉴든 한 끼 분량의 식사를 딱 떨어지게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유부초밥이 미친듯이 먹고 싶어서 바로 재료를 사 왔는데 유부피가 2인분씩 소포장이 되어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일은 다른게 먹고싶어질테고 유부초밥은 언제 다시 먹고싶어질지도 모르는데, 봉지를 뜯고 남은 1인분 분량의 재료를 기약없이 냉장보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는수 없이 유부초밥 2인분을 만들어서 1인분은 먹고 나머지 1인분은 냉동실에 넣어야했다. 음식 남기는 것도 싫어하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나 냉동실에 쟁여두는 것도 싫어해서 기분이 굉장히 찜찜했다. 마치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남은 음식을 쏟아부은 뒤 눈에 잘 띄는 곳에 대충 던져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이상 이런 일은 어쩔수없이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음식을 남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냉장고 속 재료가 남아도는 것도 꽤나 곤란한 일이다. 음식을 가열차게 해먹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이나 냉장고 안에서 굴러다니는 식재료들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냉장고에 늘 먹고싶은 음식 재료가 구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든 1인분을 딱 맞춰서 재료가 들어오고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없는 재료들은 적정한 기간 내에 소비할 수 있을 만큼만 채워둬야 한다. 냉장고에 이미 입주해 있는 식재료들의 경우 어떻게 하면 잘 달래서 먹기 전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손질을 해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면 깨끗하게 목욕재계도 시켜드려야 한다. 말하자면 잘 보관해야 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늦은 밤 하품을 한움큼 입에 물고 달래 뿌리 껍질을 까면서, 시금치를 데치면서, 감자와 당근을 또각내면서 생각한다. 날 귀찮게 하는 것들, 조금만 기다리면 다 맛있게 먹어치워주겠다.





  혼자서 내 몸 하나 건사하려고 밥을 차려먹다 보면 부산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쓸데없는 결벽에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뱃속으로 밀어넣다간 체하고 말 것이다. 이제 왠지 모를 찝찝함을 극복하고 남은 것들을 잘 보관하는 과정에 익숙해질때가 됐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온갖 근황과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도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 표현되지 못한 소회들은 입 안을 맴돌다가 밥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삼켜진다. 아마 그건 지금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감정들이리라. 하지만 잘 갖고 있다보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든 표현할 수 있겠지. 아니면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잘 소화시킬 수 있겠지. 내가 냉동실에 넣어둔 유부초밥처럼 꺼내서 데우기만 하면 다시 내일의 행복이 되어 찾아오겠지. 그 때가 되면 지금 삼킨 말들을 꺼내 맛있게 먹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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