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513-240519
새벽 세시다. 나는 방금 전 박카스 한 병을 원샷 했다. 이번 주 육아일기를 쓰기 위해선 잠을 쫓아내야 한다. 모처럼 휴직 기간에 사서 고생이다. 눈물이 난다. 오해는 말아주길, 하품을 찢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걷게 만드는 데 공헌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썬데이 파더스 클럽’. 주 양육자 역할을 경험한 다섯 명의 아빠가 일요일마다 소회를 나누며 발행한 글을 엮은 책이다. 용기를 얻었다. 용기를 너무 많이 얻은 게 문제였다. 육아휴직도 육아일기도 해볼 만하다고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일 년 전의 나는 젊었다. 뭘 잘 모르고 무모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책 이름은 ‘빅토리 노트’이다. 김하나 작가의 엄마, 이옥선님이 쓴 육아일기를 스캔하여 40년 만에 밖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김하나 작가는 살면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우와,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다 싶었다. 누가 읽어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글, 그러니까 당사자 한 명만 읽어도 의미를 다하는 글, 이 편지 같은 글을 써보기로 결정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긴 편지 같기도, 실록 같기도, 위인전 같다가도 결국은 또 자기 수양록 내지는 반성문 같은 글을 적게 된 것이다.
매주 써내리다 보니 벌써 열여덟 번째 차례다. 과정은 뿌듯하기도, 나름 재밌기도 하다만 사실 팔 할이 고역이다. 일주일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마감날을 수요일로 정했는데, 화요일밤부터 개그콘서트 엔딩 음악이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눈높이수학 선생님 얼굴도 떠오른다. 나는 그 학습지를 한 번도 안 밀려본 적이 없다. 창의력은 미뤄놓은 여름방학 일기를 지어내며 길렀던 것 같다. 세 살 버릇이 진짜 오래간다. 그래도 이제 어른이니까 그럴 순 없다. 넷플릭스 보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수도승처럼 쓴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한없이 귀여워하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기록으로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콜라주, 『‘빅토리 노트’ 출판사 서평』, 2022)
요즘 날씨가 좋다. 등원하기 전에 아이와 뒷산을 거닌다. 그녀가 좋아하는 새의 지저귐도 듣고 꽃도 같이 예뻐한다. 늘 같은 길을 걷지만 매일의 달라짐을 이야기한다. 소소하고 행복하다. 이 시간이 다시 못 옴을 알기에 최대한 멀리멀리 돌아 돌아 걷는다. 늘 지각이다. 그래도 나는 이 반복되는 늑장이 참 좋다. 왠지 아련한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게 된다. “이 길이 우리 기억에 많이 남겠네”. 아이는 가끔 알아듣는 것처럼 나를 멀뚱히 쳐다보곤 한다.
안다. 내 기억 속에만 남을 것임을 안다. 일정 주기로 특정 추억을 반복해서 얘기하게 될 것임도 안다. 행복의 기억은 보통 수채화 같기 마련이다. 아름답지만 어렴풋하게 번져 있는 심상이다. 그러고 싶지 않기에 이번 주도 육아일기를 쓴다. 이 기억만큼은 연필 밑그림 위에 펜선을 선명하게 따놓고 싶다. 아크릴 물감으로 쨍쨍하게 색을 칠해 선물하고 싶다. 아이의 마음속에 예쁘게 걸려 있는 액자가 되길 바란다. 살면서 힘을 얻는 보물이었으면 한다. 징징대는 내용이 반이지만, 우리 딸은 내가 무슨 마음이었을지 이해할 거라 믿는다. 매일 등원길에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240513(월) : 일찍 일어나 아빠와 아기띠를 한 채로 잠시 잤다가 등원했다. 오후에는 아빠와 홍제천에서 오리를 구경했다. 놀이터도 갔다.
240514(화) : 아빠와 등산을 하고 등원했다. 하원을 하고 까루나 포틀럭파티에 참석했다. 최연소 멤버.
240515(수) : 빨간 날! 아침에 신연중학교에서 엄마아빠와 축구를 하고 홍제동을 산책했다. 오후엔 비가 와서 집에서 놀았다.
240516(목) :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 먹고 잤다. 어린이집은 지각. 끝나고 아빠와 홍제폭포라이브를 구경했다. 놀이터를 갔다가 귀가했다.
240517(금) : 등산을 하고 등원했다. 하원하고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 아빠는 저녁에 어린이집 간담회에 간다고 나갔다.
240518(토) : 엄마아빠와 구리에 갔다. 스타벅스에서 처음으로 주스를 마셨다. 집에 오는 길에 홍제우동에서 밥을 먹었다. 긴 낮잠을 자고 코드시브에 다녀왔다.
240519(일) : 지구커리로 동남아콘셉트 파티에 다녀왔다. 귀갓길에는 더 위크엔드 바 야외 좌석에서 아빠 엄마와 퀄리티타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