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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Aug 16. 2024

육아휴직 17주 차 : 내시경과 같이 산다

아빠 육아 : 240520-240526


 몇 년 전부터 회귀물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다. 기억과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환생하는 판타지 스토리를 뜻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떠올리면 쉽다. 주인공은 정보 격차를 이용해 통쾌한 복수를 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안다고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인생. 보통 그 포인트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느냐, 리얼로 회귀물을 간접 체험 중인 한 남자를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 이회차를 바싹 옆에서 관람 중인 아저씨가 있다. 아시겠지만, 나다.


 날 닮은 아이의 성격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을 한 두 마디씩 할 줄 알게 되니 멘트들에서 품성이 드러난다. 걷고 뛸 수 있게 되니 내딛는 발의 뽄새에 개성이 묻어난다. 그 캐릭터가 나와 심히 유사하다. 보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배가시킨다. 나는 딸 앞에선 세상 다정한 사람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의 예민함이 보이는 걸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걸까. 정말 선천적인 기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닌 DNA, 뭐 그런 건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나와 아내의 장점만 가져가길 바랐다. 자기 전 부부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 우리는 서로 상대방보다 나은 신체 부위를 골라서 머릿속으로 콜라주 해보다 잠들기도 했다. 물론 내 외모는 태어날 아이의 손톱 모양이나 귓불 같은 지엽적인 부분을 담당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정확히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닮지 않았으면 했던 나의 내면이 아이에게 보일 때마다 뜨끔하고 미안하다. 말했듯이 안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은 공통된 교훈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2006)





 자식은 부모의 내시경이다.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과오를 돌이키게 된다. 흰 바지를 입은 사람처럼 마음속 엉덩이를 자꾸 확인해 보게 된다. 지금이라도 내 성품을 고쳐봐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아이가 안좋은 모습은 덜 보며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만큼 나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닦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세상 다정한 사람을 매일 메소드 연기하다 보면 조금 나아지진 않을까.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이는 타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전제다. 나의 선천적 기질을 닮았다고 비슷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예상 자체가 오만이다. 아이는 나의 분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갈 것이다. 나 역시 유기체로서 늘 생장하며 아이에게 잘 이해되기 위한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닮은 부분이 보인다면? 어쩔 수 없다. 대인배 아내에서 간 50%의 DNA를 믿어봐야지. 언제나 그래왔듯 그녀에게 답이 있을 것이다.




240520(월) : 아침 등산 후 등원하고, 집에서 낮잠을 잤다. 용산역에 가서 아빠친구 가족(우재네)을 만났다. 편백찜집에서 밥을 먹고 용산역에서 엄마 아빠와 신나게 놀다가 집에 왔다.

240521(화) : 아침 등산 후 등원, 하원하고 까루나 포틀럭파티에 갔다. 잠이 덜깨서 낯을 가렸다. 집에 오는길에 아는 언니(지애)를 만나서 같이 홍제천 산책을 했다. 엄마를 만나서 집으로 들어왔다.

240522(수) : 아침잠 자고 걸어서 등원했다. 어린이집 산책 도중 아빠를 우연히 마주쳤다. 같이 어린이집으로 복귀해서 밥먹고 하원했다. 신기한놀이터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 저녁에는 입에서 손빼기 연습 시작했다.

240523(목) : 아빠와 등산을 하고 등원했다. 하원하고 홍제천을 산책하다 앵무새를 만났다. 반가웠지만 무서웠다(울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를 마중했다.

240524(금) : 아빠와 등산하고 등원, 호피무늬 옷을 입었다. 홍제천 산책을 하고 오리를 보고 집으로 왔다.

240525(토) : 오늘은 엄마아빠와 집에서 놀았다. 집에서 노는 것도 해봐야한다고 엄마아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240526(일) : 비오는 오후 문화역 서울 행사(로컬 크리에이티브)에 다녀왔다. 신기한게 많았다. 다녀오는 길에 많은 양보를 받았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던 하루.




조심성이 많아 엉덩이를 뒤로 뺀채로 구경하는 나와 닮은 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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