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연길 Aug 21. 2024

육아휴직 19주 차 : 레모네이드 마시다가 울었다

아빠 육아 : 240603-240609



 아침 어린이집 등원준비, 그 고단함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많다. 프로세스는 매일 같다. 다만 변수도 맨날 다르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수능처럼 당혹스럽다. 늘 실수를 유발한다. 수저통을 잘 챙기면 손수건을 깜빡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일이 있다. 내 마음이 태평하다. 원래의 나라면 완벽하게 준비 못한 상황에 짜증이 났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다시 가서 가져다주면 된다. 그마저 귀찮으면 어린이집을 안 가면 그만이다. 전혀 근면하지 않다. 그래서 좋다.


 휴직은 손해다. 물질적 관점으로 보면 분명 그렇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을 비겁한 변명으로 여긴 적이 있다. 당장 내딛는 걸음을 신경 쓰기에도 바빴다. ‘성공하는 사람은 쉬어간다’라는 말엔 콧방귀를 뀌곤 했다. 상술 같은 말, 팔기 위해 지어낸 메시지라 생각했다. 귀를 닫고 가장 바쁠 때 제일 열심히 살았다. 주마가편이라는 말이 멋있다며 칭송했다. 개근이 개그보다 중요했다. 응당 근면해야만 했다. 이제서야 뒤돌아본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일까. 쉬지 못했던 것일까.


 점점 쉬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다. 컴퓨터를 끄면 실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자다가 일어나서 코인 시세를 확인하고, 급똥이 마려운 상황에도 유튜브 인급동을 봐야 한다. 무한 스크롤이 가능한 SNS는 새로고침마저 필요 없다. 업무 연락은 각종 메시지 툴로 쏟아진다. 뉴스레터와 온라인 매거진이 안 보면 큰일 날 것 같은 내용을 소개한다. 인사이트를 받지 못한 날은 두려워진다. 손이 스마트폰을 쥔 모양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잠시 로그아웃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쯤이다.


 얼마 전 레모네이드를 마시다가 탄식했다. 일이 분 계속 저으면 레몬청이 음료에 모두 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회사 다닐 때의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일회용 컵을 거꾸로 쥐고, 그러니까 빨대를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놓은 채로 마시면서 일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잘 젓지 않고 마시니 어김없이 액기스는 맨 밑에 고스란히 침전해 있었다. 사이다를 마신 거나 마찬가지. 아깝단 생각에 뚜껑을 열고 빨대로 과일청을 긁어먹어보지만, 추접한 내 자태와 입가에 불쾌한 끈적임만 남을 뿐이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바빴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건 무엇일까. 반도체 섹터 해외 주식도 줍줍 아파트 청약 공모도 아니었다. 의외로 관계였다. 자주 못 봤던 가족, 연락 뜸했던 친구였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멀어져 있었다. 어렸을 적이 떠올랐다. 밤늦게 지하철을 타면 배차간격이 길어서 멍하니 기다려야 될 때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다행히 스마트폰이 없어서 지루할 수 있었다. 사람 구경도 하고 내 마음도 살펴보곤 했다. 스스로와 돈독했다. 그 모습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앞으로 레모네이드는 꼭 끝까지 저어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고 보면 휴직이 손해만은 아닌 것 같다.




240603(월) :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린큐타운 쇼핑을 했다.

240604(화) : 오랜만에 어린이집 등원, 하원하고서는 까루나 포틀럭 파티에 갔다.

240605(수) : 등산 후에 등원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하원 후 병원에 갔다. 아빠와 소아과에 갔다. 인후염이었다.

240606(목) : 현충일, 몸이 안좋아 아빠 엄마와 집정리를 하며 집에서 쉬었다.

240607(금) : 등원했다. 하원 후에 또 병원에 가서 약을 사왔다. 오름까페에 들렀다. 놀이터에서 조금 놀 기운이 생겼다. 저녁엔 엄마의 대녀가 놀러왔다.

240608(토) : 홍제천 단오축제에 갔다. 아빠엄마와 이것저것 체험하고 먹을 것도 사왔다. 저녁엔 둘리네가 놀러왔다.

240609(일) : 아빠 일본어 수업이 끝날때에 맞추어 폭포마당으로 마중 나왔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폭포 도서관에서 가볍게 책을 보고 집에 왔다.




일과시간(?) 맥주도 한 캔씩 딴다





이전 20화 육아휴직 18주 차 : 수염을 기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