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610-240616
아내의 친구가 근처의 대단지 아파트에 산다. 그 곳에서 축제가 열린다며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락페부터 홍제천 단오행사까지 다니는 우리 가족이지만 아파트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냉큼 기저귀를 챙기고 가보았다. 아파트 중앙 잔디밭에 빨노파 포장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사격, 황금잉어 뽑기, 자석 다트, 그러니까 삼십년 전에도 보았던 유원지 엔터테인먼트가 차려져 있었다. 정신이 혼미하여 잠시 시선을 위로하면 신축 아파트가 보였다. 포토샵으로 합성한 듯한 광경이었다. 그 믹스가 선사하는 이질감이 너무 신선했다.
눈에 걸렸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단지 내 어린이집 등원가방이다. 삼삼오오 어울어진 포차 테이블 한켠에 여지 없이 쌓여있었다. 유대감이 보였다. 내 선입견에 금이 갔다. 회색빛 건물에 사는 삭막한 현대인이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대단지 아파트는 마을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이 안에는 서울에서 찾기 힘든 공원도 있고 소아과도 많다.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 되어있다. 오늘처럼 초대 받아야 드나들 수 있다는 점 빼고는 완전한 모델(주민들에겐 폐쇄성마저 완벽한 조건). 이 시대 가장 한국적인 축제에 온 느낌이 들었다.
나도 아파트에 산다. 신축도, 대단지도 아니지만(페스티벌도 없지만) 사실 다른 대안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솔직히 말하면 목표 비슷한 걸로 여겼었다. 한국인의 공통된 욕망이라 믿었던 것도 같다.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다가 문득 천장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똑같은 구조의 윗집에서, 그러니까 내 머리위에서 누군가 앉아서 배설하고 있겠구나 라는 자각을 했다. 아파트가 주는 안정감이 갑갑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로 ‘EBS 건축탐구 집’이 유튜브 구독리스트에 자리 잡았다.
“내가 살고 싶은 집보다 남이 살고 싶은 집을 사라”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격언이다.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블랙 코미디다. 시세차익이 중요한 투자씬에서는 통찰력마저 있어보인다. 다만 내 머릿속엔 계속해서 물음표가 따라온다.
‘그럼 언제부터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을까’.
살아보니 일단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아이의 교육기관이나 병원과 멀어질 수는 없다. 다행히 ‘나는 자연인이다’는 구독하지 않고 있다. 가족 모두가 잘 지낼 곳은 어디일까. 주거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상가를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처음엔 임대료가 높아 부동산만 있다가 차츰 젊은 입주자를 위한 카페와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선다. 가정의학과 병원과 태권도장이 생긴다. 입시 학원과 PC방이 다음 차례. 술집과 노래방도 점차 늘어난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이 들어서면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집도, 마을도 소모되는 형태를 지닌다. 아이가 커서 고향을 둘러보았을 때 부수게 될 것임을 자축하는 현수막(재건축 안전진단 통과함)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보다 영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누가 안다면 조용히 일러주길 부탁드린다.
240610(월) : 유모차를 타고 등원, 하원 후에는 가볍게 홍제천 산책을 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 동네오빠의 장난감 자동차를 빌려 타보았다.
240611(화) : 아침에 걸어서 등원, 오후에는 까루나 포틀럭 파티에 다녀왔다.
240612(수) : 안산을 등산하고 등원, 장난감 자동차 당근거래에 아빠와 다녀왔다. 첫 차는 레인지로버.
240613(목) : 아침에 일찍일어났다가 밥 먹고 다시 잤지만 지각하지 않았다. 나들이 다녀와 기분이 좋은 아빠와 신나게 놀이터를 뛰어놀며 엄마를 마중했다.
240614(금) : 숙취가 있는 아빠와 등원했다. 엄마가 퇴근하고 엄마 친구네 아파트에 가서 축제를 즐겼다. 라이브 공연도 보고 장난감도 많이 얻었다.
240615(토) : 전주 할아버지 댁에 갔다. 에루화라는 식당에 가서 떡갈비도 먹고, 근사한 한옥까페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여행 다녀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선물도 한아름 받았다.
240616(일) : 아침에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아빠와 저녁엔 삼계탕을 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