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617-240623
코에 뾰루지가 났다. 심술이 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진 것이 큰 원인이다. 시간을 억지로 잡으려다 보니 탈이 나고 있다. 생활이 엉망이다. 그토록 고대했던 시간인데 외롭다. 정말 신기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그렇게도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직장 생활을 미화하고 추억하고 있다. 소속감 없이 개인으로서 자립한 분들을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우두커니 책상 앞에 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야심 차게 붙여놓았던 연간플래너가 한쪽 귀퉁이만 남긴 채 다 떨어져 패전국의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최근 아내가 이직을 했다. 이번 주에 최종 오퍼레터를 받았다. ‘성공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큼 축하할 일이었다. 나 역시 기뻤다. 이직을 준비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돕고자 노력했고, 축하 꽃다발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한켠으론 부러웠나 보다. 송별회식을 하고 늦게 온 아내에게 나는 심통을 내고 말았다.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모임을 부추기기까지 한 사람은 분명 나였다. 아마 본질적인 원인은 혼자서만 성장을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 내지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애꿎은 현상을 핑계 삼아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했다. 괴로웠다.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 일기를 다시 떠들러 봤다.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산다는 아이디어가 출발이었다. 그 자산이 우리 가족 세 명의 성장에 일조한다면 아깝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야만 희생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허나 왜 가장 주체적인 투자자인 나만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일 년의 반환점을 도는 지금이라도 답을 찾아야 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감정조절은 계산하지 못했다.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기가 어렵다. 십 수년만에 일을 쉬고 있는 기간에도 마음이 조급한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집 주변에서만 지내다 보니 생각이 매몰되는 것 같았다. 벗어나보고 싶어졌다. 그래봤자 옆 동네까지다. 연희동 라이카시네마로 갔다. 인터넷 세상에서 추천하던 영화 <챌린저스>를 보았다. 테니스가 소재라고 했다. 큰 스크린에서 뻥뻥 공을 쳐대는 영상을 보고 답답함을 풀어볼 심산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극장이라 설레기도 했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 있어도 되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걱정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다행히도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의 이야기에 어쩐지 내 자신이 계속해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트 도널드슨’이라는 인물에 눈길이 갔다. 그는 목적과 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왠지 내 모습 같아서 짠하고 정이 갔다. 그런 그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게임에서 주체성을 찾는다. 전처럼 누가 도와주거나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눈물처럼 흐르는 땀과 몸에 밴 스윙을 통해 회복한다. 극 속의 그가 고마웠다. 나 역시 목적이나 관계에 -그러니까 휴직이 성공해야 된다는 대의와 나에 대한 인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닐지 돌아보았다.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다. 뾰족한 묘수는 없다. 순간순간에만 몰입해 보자고 다짐할 뿐이다. 내가 마음의 뾰루지를 키우는 며칠 새 아이의 키는 또 부쩍 자랐다. 아빠도 부디 힘을 내자.
You think that tennis is about expressing yourself, doing your thing. But you don’t know what tennis is.(영화,『Challengers』, 2024)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지면, 이 대사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240617(월) : 아빠가 어린이집 지역사회 연계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선생님과 동네 약국에 다녀왔다. 오후에는 홍연길 산책을 하다가 엄마를 만나 집으로 왔다.
240618(화) : 하원을 하고 까루나 포틀럭 파티를 했다. 옥수수와 모닝빵을 양손에 들고 먹었다.
240619(수) :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한숨 더 잤다. 어린이집엔 지각을 했다. 잠이 부족해 낮잠을 집에서 잤다. 아빠와 도서관에 갔다가 엄마를 맞이했다.
240620(목) : 오늘은 푹자고 아침밥도 잘 먹었다. 아빠를 때려서 혼났다. 아빠가 미안해했다. 오후에 하원을 하고 홍제천 폭포 앞에서 벌어지는 라이브 공연을 보고 왔다.
240621(금) : 하원하고 플라스틱팜에서 열린 힙하장 파티에 다녀왔다. 엄마가 프로펠러 모자를 사줬다. 엄마 친구와 위어도우에서 피자를 먹고 시네마 치킨에 들렀다가 집에 왔다.
240622(토) : 남양주 이모댁에 방문했다.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저녁엔 어금니가 자란 것을 엄마 아빠가 발견했다(그래서 힘들었는데!)
240623(일) : 아침에 엄마, 이모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아빠와 영어책을 읽으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