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527-240602
올해 처음 해본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도예다. 자주 가는 공방 카페에서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눈여겨보았다가 도전했다. 점토를 끊임없이 만지고 다듬는 작업이었다. 끝이 정해지지 않았다. 내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올 때까지 인고하는 행위였다. 다른 하나는 콜드브루를 내려 마시는 일이다. 육아를 하면 잠이 부족하다. 커피머신은 소리 때문에 쓸 수 없다. 필터로 내리는 건 사치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시작했다. 원두를 여덟 시간 냉침한 후 마셔야 한다. 역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일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스스로에겐 이 사실들이 꽤 놀라운 변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참지 못함의 아이콘이었다. 말티즈보다 못 참았다. 정말 부지런하게도 인내를 거부하며 살아왔다. 마음이 옹졸해서 그렇다. 하고 싶은 걸 못하면 심사가 뒤틀리고,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해버리고 마는 스타일이었다. 하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게다가 그들이 가까운 사람인 적이 많았다. 모쪼록 고치고 싶은 성격이었다.
육아를 하다 보니 성격이 변한 건지, 변할 때가 돼서 변한 건데 마침 육아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만, 확실한 건 요즘 내 이마엔 인고의 땀이 송송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정초에 성균관 유생들이 붓글씨로 나에게 올해의 한자를 적어줬다면 ‘참을 인[忍]’이라는 글자를 간드러지게 써줬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아이, 그러니까 이 작은 존재에게는 도무지 호통을 칠 수 없다. 물론 화를 낸 적도 있다. 다만 그 후로 몇 날 몇 일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슬픔도 참는다. 등원할 때마다 눈물의 원양어선, 아직도 승선한다. 명랑항(어린이집 이름)을 뒤로하고 떠날 때는 마음은 증기선이 되어 뿌뿌 운다. 복직을 하는 내년의 걱정도 일단 참는다. 아침에 지금처럼 한가로이 안아줄 수 없을 것 같아 벌써 미안하다. 다 커버린 후도 상상하곤 하는데 그 애잔함도 참는다. 어쩔 수 없다. 결국은 지금 이 시간 아이와 즐겁게 노는 것만이 답이다. 노[怒]와 애[哀]는 일단 감추고 희[喜]와 낙[樂]만 품고 간다. 원래 광대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콧평수는 넓어진다.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 용가리 한숨을 자주 쉬는 까닭이다. 한숨마저 들키지 않으려고 눈으로는 웃어본다. 정말 기괴한 표정이다. 아이가 기억할 내 얼굴이 궁금하다. 엄하게 훈육을 하다가도 혼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잠시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쩍 벌려서 감춰야 한다.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라고 둘러대곤 한다. 등원의 항구 앞에서는 울먹임을 참는다. 입을 꽉 다문다. 가을도 아닌데 턱에는 호두가 생긴다. 수염을 기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덧] 아내에게도..더 잘해야겠다.
240527(월) : 아빠와 등산(고은산) 후 등원. 엄마가 명동에서 일이 끝나서 그 곳으로 갔다. 엄마의 새직장을 구경하고, 남포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놀다가 집으로 왔다.
240528(화) : 아빠와 등산(안산) 후 등원. 하원하고선 까루나 포틀럭파티에 갔다.
240529(수) : 아빠와 등산(고은산)후 등원. 하원후 아빠와 홍제천 산책을하고 에스페란자 로스터스에 가서 커피를 사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도 알차게 놀고 왔다.
240530(목) : 안산 등반 후 등원, 하원하고는 홍연길 산책, 해달별 놀이터에서 놀고 퇴근한 엄마와 같이 집으로 귀가 했다.
240531(금) : 엄마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등원했다. 걸어서 하원을 했고, 놀이터에서 놀았다. 위풍당당.
240601(토) : 엄마 아빠와 연희동 나들이, 처음으로 고기집(짚불집)을 갔다. 연남장을 가서 카페를 즐기고, 사러가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240602(일) : 간사이로 여행을 떠났다. 공항 근처에서 텐동(센키치)을 먹고, 이즈미사노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