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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Mar 24. 2020

재택근무 하기 싫어

좋은데, 뭐랄까 싫어.


 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만큼은 자율의 가치를 수호하며, 정해진 과업을 신실히 이행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 간의 실패에서 배웠다. 평소와 같은 시각에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머리도 감았다. 옷도 갈아 입고, 양말도 빨래가 아깝다 생각지 않고 이쁜 놈으로 신었다. 커피도 일부러 테이크아웃 컵에 내렸다. 늑장의 욕구를 깎아가며 회사 메신저에도 일찍이 접속해놨다. (실제로 출근한 것과 같은 표정을 연기하며) '다들 아직 출근 전이군..' 이란 내적 대사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몇 시간 째 놀고 앉아있다. 아, 브런치에 접속하지 말았어야 했어.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아니라던데. 글 쓰는 건 꽤나 고차원적인 활동이라서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거부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연유로 글 쓰는 행위를 미루는 것에 죄책감이 없었는데, 몹시 당혹스럽다. 아,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쉽게 이해가 간다. 맞어, 내 뇌는 글 쓰는 것보다 일하는 걸 더 싫어하는 거였어. 이렇게 명백한 진리가 또 있을까. 내가 모르는 척했던 것들을 알게 해 주는 요즘이다. 그렇게 재택근무는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달콤한 재택근무는 썩은 과실이다. 땅거미가 내려오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거충거충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 못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로서 양심의 가책, 나의 보잘것없는 의지력에 대한 한심함은 기본. 자기 유능감에 대한 좌절 내지는 '이 불가측 한 세계화 4.0 시대에서 내 밥숟가락은..?'이란 주제에 까지 천착하게 되는데, 이런 것 까지도 뭐 좋다. 견딜 수 없는 건 집에서도 눈에서 보이는 노트북이다. 평소엔 회사에 있을 노트북이 이런 헛생각에 빠진 나를 자꾸 쳐다본다는 것이다. 집에서 회사 생각이 분리가 안되고, 그 사실에 대한 자각과 내 자신 또한 구분이 안되니 집에서만큼은 꽤 귀여운 내 눈빛도 일터에서처럼 부패한다.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는 진정된다. 하지만 많은 유산을 남길 것이 자명하다. 특히 기업 문화에 변화를 잉태해 놓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재택근무의 경험이 어쩌면 몽정 같은 체득이 되려나. 우리는 그동안 근태(로 쓰고 애티튜드, 로열티 따위로 읽는 것)을 신봉해 왔다. 이 믿음 속의 균열부터 피어날 것이다.

'나는 일을 막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일찍 나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니 노는 것도 아니야'

라는 불안한 안도감의 공기는 도시전설로 남을 것이다. 성과라는 잣대 앞에 모두가 발가벗겨지는 셈이다. 국제유가도 아니고, 급진 진보당의 정치 약진도 아닌, 정말이지 의외의 계기로 우리는 변화를 시작해버렸다.


 며칠 전 출근하는 길에 동기인 강형을 만났다. '재택근무 어땠냐?'로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다시 '이 불가측 한 세계화 4.0 시대의 내 밥그릇은..?'이란 주제로 또 귀결되었다. 옹졸한 우리 답게, 회사 내 기성세대들을 비판하며 불안한 안도감을 양생 해 나갔다. '맨날 꿀만 빠는 차부장들 말이지. 이 기회에 퇴출해야 해' 예전에도 수차례 나눴던 것 같은 대화를 해대는 와중에 별안간 참담해졌다. 가방 속의 노트북이 나만 들리도록 외쳤기 때문이다.

'너도 일 안하고 놀 때 많잖아. 사실 변화가 두렵잖아..이 한량아..이런 젊꼰아..'


 정말이지 그 동안 내가 모르는 척했던 것들을 알게 해주는 요즘이다. 느닷없이 우리는 변화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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