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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Nov 06. 2020

눈치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홍눈치입니다.


'눈치'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자주 쓰는 말이지만,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하기엔 어렵더라구요. 특히나 영어로 설명하기엔 더 난해하죠. '사회성'이라고 포괄해버리기에도 서운합니다. 어쩌면 남 신경 덜 쓰는 서양권에선 말해줘도 이해하기 힘든 단어일 겁니다.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더 헷갈립니다.

'눈치를 본다'라는 말은 일단 네거티브한 뉘앙스가 강한데요. 기가 죽어 있는 표정, 혹은 굽어 있는 등판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곧 가엾은 태도를 상징하기에 누구도 그렇게 되고 싶지 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왜 '눈치가 빠르다'라는 건 긍정적으로 해석될까요? 눈치를 잘 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인데 말이죠. 참 어려운 단어입니다.


저의 첫 사회생활은 군 복무였습니다. '눈치가 빠르다'라는 칭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변의 상황을 혼자 감지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잘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자부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게 좋기만 한 걸까요? 요즘 들어선 그렇게 속단했던 과거의 저를 말리고 싶습니다. '눈치'라는 단어에서 가까워질수록 자기 자신은 병든 다는 것을 몰랐던 게 아쉽습니다. 그게 인생이겠죠.


좌우지간에 남 신경을 많이 쓰는 이 곳, 우리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 제가 있는 기분이네요. 아닌 척하다가도 결국 내 행복의 척도를 남에게서 찾았습니다. 하여 괴로운 날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있었으니까요. 더욱이 눈치까지 빨랐으니, 인생이 질투와 분노로 가득 찼던 것 같아서 씁쓸하네요.


안 그렇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서는 그 다짐이 자꾸 무너지네요. 더군다나 이런 사람은 저만으로도 족한데, 요즘은 모두 화가 나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남자라서 여자가 싫어지고, 회사원이라서 자영업자를 미워하고, 다주택자는 무주택자를 조롱하고. 나중엔 왜 싫어했는지도 잊은 채, 분노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이런 싸움의 감정들이 지속되는 게 괜찮은 걸까요? 눈치 없이 살고 싶습니다. 그 것이 제 소망입니다.




재미없고 불편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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