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을 넘어야 살이 빠진다

에세이와 함께 - 11. 운동의 이유

by 홍유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이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항상 깊은 고뇌와 함께 그 본질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것도 주중에 매일 규칙적으로 이 시간은 언제나 오후 5시쯤이다. 겨울, 해가 어스름 내려가는 시간이 다가오면 이 고뇌는 더욱 심각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오후 5시는 어떤 시간인가. 헬스장에서 실내 자전거를 딱 30분쯤 타면 이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헬스장에 들어오고, 규칙적으로 같은 운동을 한다. 다리는 의례적으로 페달을 신나게 밟고 있지만, 마음은 저기 먼 곳을 향해 날아가 있다. 멀리, 저기 멀리 떠난 마음은 지금 내가 하는 이 운동의 이유와 본질에 대해, 이득과 손실에 대해 심각하고 치열하게 고민을 한다. 건강하게 살면 되지, 굳이 살을 빼야만 하는가. 인바디 측정 지수를 어디까지 믿어야만 하는가. 나의 건강이란 무엇을 통해 정의되는 것인가. 이 모든 고민과 번뇌를 한 마디로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운동하기 싫다.


운동이라는 것이 루틴이 되면 좋다던데. 운동이 건강에 좋다던데 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는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좋은지 몰라서 못하는 일보다는, 좋은지는 알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하는 일이 더 많은 법이다. 식이 조절이 그러하고, 운동이 그러하다. 그래서인가. 정말 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저 이론만 쌓으며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하기 싫음을 저 밑에 숨겨 놓은, 운동을 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이유의 실체가 나타났다. “드. 레. 스.” 합창 대회를 앞두고 받은 드레스. 합창단 활동을 하다가 그만두신 분이 남겨 놓은 것 중 적당하게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입었다. 잘 들어간다. 하지만 숨을 쉴 수가 없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숨을 가득 들이 쉰 상태로 꼿꼿이 서 있는 자세만 가능하다. 그것도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채로. 노래는 둘째 치고, 내가 무대 위에서 이렇게 10여 분을 서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 뺄 것인가. 많이 뺄 것인가. 안 뺀다는 선택지는 보기 구성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얼마나 뺄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그동안 이론으로만 배우고 머릿속에서만 실행했던 다이어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먼저 식이 조절. 밥은 먹되, 양은 절반으로 줄인다. 아침과 점심까지는 평소의 80% 정도로. 저녁은 반만. 때로는 점심을 라떼 한 잔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 헬스장에서 나왔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운동장을 개방한 근처 학교로 들어갔다. 손에는 휴대전화와 자동차 키가 들어 있는 가방. 그리고 줄넘기. 밝은 햇빛 아래에서 첫날은 줄넘기 100개를 했다. 헉헉거리며 땀을 쏟아 냈다. 둘째 날은 100개 더해서 200개. 셋째 날은 100개 더해서 300개. 주말에는 건너뛰더라도 주중에는 거르지 않았다. 그렇게 2주 차. 하루에 천 번의 줄을 넘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오후 5시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줄에 의지하여 나를 다스리는 새로운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줄넘기 천 번이 빼 주는 몸무게는 200g 정도이다. 그것이 어디겠냐마는, 그동안 겁 없이 쌓아 놓았던 몸무게는 참으로 더디게 줄어 갔다. 우레탄 바닥에서 헉헉거리며, 100개 하고 쉬고, 150개 더 하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땀을 하염없이 쏟아 내면 그날 200g 감량된 저울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저울의 숫자는 다음날 다시 천 번의 줄넘기를 하는 힘이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고, 천 번 줄을 넘어야 살이 빠진다. 몸무게와 함께 주변도 빼기 시작했다. 겁 없이 쌓아 올린 몸무게처럼, 겁 없이 집 안 여기저기 쌓아 넣은, 살림을 빙자한 쓰레기들이 눈에 보였다. 정리하는 속도는 몸무게가 빠지는 것처럼 한없이 느리다. 세월에 기댄 방만함은 엄청난 중량을 갖는다. 그래도 조금씩. 몸에도 집에도 조금씩 공간을 만들어 간다.


오늘은 비를 핑계로 천 번을 건너뛰었다. 내일은 오늘 못했던 것은 잊고 열 개를 더해서 1010개를 넘을 것이다. 그렇게 천 번을 쌓으면서 나를 비워 나간다. 비울수록, 넘을수록. 목표는 선명해지고, 공간은 단정해진다. 그리고 다시 1020개, 1030개. 나를 한계 짓던 무언가도 조금씩 뒤로 물러날 것이다. 그렇게 공간을 넓혀가며, 나의 한계를 넓혀가며 운동을 한다. 헬스장 불빛 아래에서 그렇게나 치열하게 했던 운동에 대한 고민은, 햇빛 아래에 나와서야 조금씩, 조금씩 답을 보여줬다.


표지 그림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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