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캐릭터의 태도가 일치할 때
‘영화는 화려한 것.’ 어린 시절 느낀 영화에 대한 인상이다. 영화채널에서 액션 블록버스터를 즐겨보던 유년의 나에게 영화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그 후 20대 초반이 된 나는 입시라는 관문에 가려 인생의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던 영화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이때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감상했는데,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채 절제와 여백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절제와 담담함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구질구질한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시한부라는 소재에서 올 수 있는 신파적인 요소를 담담히 걷어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형식은 삶을 대하는 정원(한석규 분)의 태도와 맞닿아있다. 영화에서 정원은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다. 남겨질 아버지를 위해 사진관 기계 작동법을 손수 적어놓고, 비디오 사용법을 직접 가르쳐드린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옛사랑의 사진을 치우면서 추억을 추억 그 자체로 놓아두려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더하기 보다는 잘 정리하여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다림(심은하 분)이 찾아온다. 주차 단속원인 그녀는 정원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어떻게 보면 정원의 삶은 현재 주차된 차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나아가기 보다는 그 자리에 멈춰 자동차에 깃든 추억을 회상하는 정원에게 다림은 마치 ‘아저씨! 여기 차를 대시면 어떡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정원의 삶에 들어와 사랑에 시동을 건다. 정원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과연 이 여자를 사랑해도 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평소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무료로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는 부탁을 거절 못하는 것처럼) 정원의 성격과 맞물려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그렇다고 냉정하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태도로 극이 펼쳐진다.
정원의 태도는 다림을 실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은 적극적인데 정작 정원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영화 중간 중간 보이는 다림의 뾰로통한 태도는 정원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게다가 정원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다림에게는 한마디도 안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혹자는 이를 ‘잠수이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지금 와서 보면 정원이 너무한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이를 두고 논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원의 태도가 매우 ‘정원답다’라는 것이다.
정원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제일 친한 친구 철구(이한위 분)에게도 시한부 사실을 죽기 직전까지 말하지 않은 태도나 첫사랑 지원(전미선 분)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음으로써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 이것이 미덕이라고 정원은 생각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정원의 모습이 마치 우리 부모님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기도 하면서 이 영화가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태도가 존재하겠지만...) 집안에 우환이 생겨도 일단 자식에게 사실을 숨기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림의 입장에서는 정원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다림은 정원이 시원하게 모든 상황을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정원을 일갈하듯이 사진관에 돌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은 침묵을 선택한다. 카페 유리창을 어루만지며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참는다. 정원은 자신이 침묵하고 그저 잠깐 다림의 인생에 왔다간 사람으로 남는 것이 그녀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그 행동이 효과적이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정원은 다림을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배려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림이 정원의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영화에는 반드시 감정의 과잉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는 다림에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심지어 둘이 쓴 편지의 내용을 관객에게 알려주지도 않음으로써 영화 형식적으로 여백의 미를 살린다. 절제와 여백의 미는 한정적인 감정과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적인 동요를 관객의 가슴속에서 스스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해준다. 만약 내가 정원이었다면 죽음을 저렇게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정원은 스스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담담하고 절제된 장면들 속에 녹아있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다림이는 잘 살고 있을까?’ 유튜브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댓글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림은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는다. 정원과의 사랑에서 아픔을 받은 다림이지만 이를 잘 이겨냈고 좋은 추억으로 남긴 모습이다. 다림이가 정원의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됐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다림의 마지막 모습은 정원의 배려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모습으로 보인다. 정원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무척이나 담담한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나를 떠나보냈다고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림이는 잘 지낼 것이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