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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Apr 06. 2016

혜화동 옥탑방

우리의 스물여섯

음악을 하기로 했다. 20살 재수생이었던 우리는 팀을 결성했고, 군대를 다녀와 혜화동 옥탑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300에 37, 수도세와 전기세를 포함해서 각각 20만 원씩 월세를 냈다. 그게 스물여섯. 서로의 시간이 맞기까지 6년이 걸렸던 것은 우리의 삶이 음악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과 너의 학업. 그리고 더 알지 못하는 너와 나의 개인적인 것들. 스무 살의 우리는 청춘을 노래했다. 남발되는 쉬운 단어가 아니길 바라며 '흘러가는 청춘아, 내 손을 잡아줘'라며 가사를 썼다. 서로가 닮았다는 생각. 그것은 비단 나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은 마이크로 녹음을 했다는 너의 음악은 곧 내 음악이 되었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통해있었으니까. 재수를 하던 6명의 무리 중에 너와 내가 가장 잘 맞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힙합을 얘기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음악을 공유하는 것. 그것들은 어느새 나를 잠식했고 '가사 한 번 써봐'라는 너의 말은 다시 잡은 수능특강을 집어 던지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가사를 썼던 날. 나는 처음으로 힙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 인생에 첫 힙합은 중3 급식시간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힙합 찌질들이 수업용 티비에 '다이나믹 듀오'의 'Ring my bell'을 틀었었다. 나는 나직이 생각했다. '병신들'. 만약 그 새끼들이 조금 더 멋졌었다면, 아마도 나는 힙합을 훨씬 일찍 만났을지도 모른다. 내 학창시절의 끝에서야 겨우 힙합을 만난 것은 그 병신들 때문이 분명하다. 진짜 그 새끼들은 멋대가리가 없었으니까.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나의 두번째 힙합은 마약, 섹스, 갱, 스웩이 아닌 문학적 힘을 가진 음악이었다. 말 그대로 시. 스무 살, 우리는 시였다.

 스무 살 첫 가사에 감탄해 준 친구를 만나 첫 작업실인 헤화동 옥탑에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우리는 '음악 하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서로의 소통에는 오해가 있었다. 나보다 전역을 1년 6개월이나 일찍한 네가 배우는 음악은 이미 힙합과 멀어져 있었고, 나에게 음악이란 힙합 그뿐이었다. 그렇게 '음악 하자'라는 소통이 어긋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 추운 옥탑으로 짐을 옮겼다. 한 달, 어긋날 것을 알았을까. 음악이라는 단어에 우리의 마음들 모두를 담지 못했으니, 1년 계약의 옥탑에서 9개월 만에 뛰쳐나온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녔다. 지나온 6년의 시간이 그저 아깝기만 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달랐을까? 하고자 했던 음악, 힙합을 하고 있었을까? 싶지만, 너와 나는 더 알지 못하는 각자 개인의 삶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옥탑을 서로 피해가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힙합이었지만, 너는 힙합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대면하지 않는 것이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6년간 변한 것은 군대를 다녀와서 까매진 피부와 조금 더 많이 나는 수염뿐만이 아녔다. 우리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접점을 맞추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우리는 무던히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려 애썼다. 가장 큰 분모인 힙합이 사라졌으니, 아주 사사로운 것들을 공통되게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살아가는 옥탑이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것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9개월도 못 버텼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처음 묶어놓은 힙합을 놓고, 땅을 보고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집을 떠났다. 아직도, 서늘해지려던 그 공기가 뚜렷하다.

 재수에서 옥탑까지, 우리가 했던 작업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여기진 않는다. 정말 빛났던 청춘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엔 자위용 음악이 된 듯하지만, 청춘의 시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작은 음악들은 빛이 난다. 힙합이 취미가 아닌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되었던 날, 그 흥분과 함께 녹음했던 결과물은 여전히 좋다. 너는 여전히 음악(힙합을 제외한)을 하고, 나는 혼자 할 용기가 없어 이렇게 힙합을 좋아하는 찌질이가 되었다. 사실, 나 혼자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스무 살에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에 나는 더는 힙합을 취미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그 후로 1년,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살아왔다. 최근엔 버벌진트가 공개한 '시발점' 비트에 오랜만에 랩을 했다. 이제는 비트를 어떻게 타는지도 잊어버린 듯한데, 내가 처음 만난 힙합은 아직도 '시'적이라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당연한 거다. 우리는 과도기였고 힙합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와, 이제는 힙합이 전부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변한 것은 사실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변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에게 작은 위로와 수고했다는 말은 우리가 남겨둔 노래로 충분하다. 오늘은 우리 노래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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