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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Mar 29. 2016

공항 뒤편

엄마의 공간

엄마가 인천 공항 뒤쪽으로 이사를 왔다. 부산에서 짧은시간, 마음을 잘 다독였는지 새로운 바다 앞에 꽤나 단단한 모습이다. 사실, 새로운 바다는 아니다. 내가 7살이 되기 전까지 엄마는 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배달했으니, 어찌 보면 회귀다. 20년 만에 엄마는 다시 인천 앞바다에 자리를 잡았다.

 이사를 도우러 가는 공항철도가 괜스레 설렜다. 여행자들 틈에 섞여 마음도 부풀었다. 서울을 벗어나며 바다가 보일수록 관계와 책임은 꺽어졌고 영종대교에 가느다랗게 딸려오던 자잘한 감정은 종착역에서 아주 끊어졌다. 공항이 주는 해방감. 잦진 않지만 몇 번 느꼈던 공간 자체의 감정을 정통으로 맞았다. 공항에 도착했을 땐 나는 혼자였다.

 스물다섯의 엄마는 인천을 싫어했다. 모든 관계와 책임이 새롭게 주어진 곳이기에 엄마는 인천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치를 떨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가 배달을 위해 머리에 올려놓은 음식들은 너무 무거웠고 식당 구석에서 출몰하던 쥐는 엄마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저, 아빠가 좋아 시집왔지만, 생에 처음하는 식당 일은 삶에 어떤 도움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용인에 이사와 보험 일을 하기 전까지 식당을 운영했다. 삶의 어떤 도움도 아니었지만 이미, 삶의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나이였다.

 몇 년 후 큰 사고와 그로 인해 정리하게 된 가게. 그리고 싼타모라는 이름의 큰 자동차. 엄마는 싼타모였는데 그 큰 자동차는 아주 헐 값에 팔렸다. 중학교 1학년, 나는 엄마를 엄마라는 관계에서 떼어내어 위로하지 못했다. 회복과 보험왕 그리고 남편의 죽음. 부산에서 또 다시 회복과 인천. 다시 회귀다. 엄마는 트라우마를 정통으로 맞으러 인천으로 돌아왔다. 치가 떨리던 그 단어로 들어갔다. 나에게는 쉽게 끊어지던 관계와 책임이 엄마에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영종대교를 넘어설 때도 엄마는 두 아들의 엄마였다.

 스물다섯 강영순을 위로한다. 빨간 점퍼를 입고 나보다 어리며 키 작은 깡순이를 모든 관계에서 떼어내어 위로하고 싶다. 이제 엄마의 젊음은 나의 젊음이 되었고 나는 엄마보다 한 살 많다. 모든 축복과 사랑이 그곳에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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