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si Sep 30. 2023

있지도 않은

 있지도 않은 형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 여동생에 대해 생각한다. 형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힘들어서이고, 여동생을 생각하는 것은 엄마가 힘들기 때문이다. 해방 일지를 보며, 염창희가 구 씨를 형이라 부르는 장면이 내게 덜컥 덜컥 소리를 내었던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다. 무언가 해 줄 수 있길 기대한다기보단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동생 낳을까? 이름을 별똥이로 방 별똥. 별을 봐야 뽕을 따니까. 그러면 방별뽕 아닌가? 했을 때, 정말 동생이 생겼다면 지금 쯤 고등학생이 되어있을 여동생이 그립다. 있지도 않은 형이 그립고. 괜히 빵집으로 들어가는 가족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든다.


형 / 심보선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 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이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땐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이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매거진의 이전글 열차와 열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