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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bj Aug 10. 2023

전장연 시위를 처음 경험한 비역세권 취재기자

23년 4월의 기록

오전 4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일정의 사내 조기출근제도 당직날.


말이야 오후 2시까지 근무지만, 보통 아침 기사를 작성한 후 별다른 일이 없으면 10시쯤 슬쩍 일찍 귀가하는 미풍양속이 있으렷다. 오후 1시쯤 재택 석간 보고를 올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꽤나 꿀인 제도다.


오전 6시 30분쯤 아침용 개비 기사 작성을 마무리하고 여자 휴게실에 누워있는데, 캡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전 8시 광화문역에서 전장연 지하철 탑승시위를 한다는데, 관련한 스케치와 시민 불편인터뷰 좀 챙겨달라는 지시였다.


한창 1시간 정도 자고 아침을 먹으려는 심산으로 눈을 붙이고 있던 때, 솔직히 짜증이 났다.


그치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오전 7시에 '자야 되는데 왜 일을 시키냐'라고 본능적으로 불평하려던 내 목소리에 내가 혐오하던 어떤 선배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의 오늘 법정 근무시간은 오후 2시까지잖아.


이 집단에서 누누이 내 태도를 가다듬게 하는 원동력은 멋진 삶의 자세를 가진 롤모델이 아니라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별 다양한 모양의 타산지돌덩어리들이다.


본능적 내면이 추잡시럽더라도 절대 그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 민폐는 끼치지 말자.

못생기되 역겹지 말자.

다짐하며 침대를 박찼다.


씩씩하게 네넵 거리고 향한 곳은 5호선 광화문역.


오전 7시 40분쯤 대기하고 있자니,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분들이 하나둘 승강장 아래로 내려와 승강장을 마주 보고 휠체어를 줄지어 세웠다.


이내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앰프로 노래를 틀고, 발언을 이어나갔다.


전장연 자체를 직접 접한 게 오늘이 처음이었다.

단 그 시위에 비판적인 시각은 다수 언론 보도 및 주변인들로부터 여럿 접했다.

사내에도 4,5호선에 집을 둔 이들은 치를 떨었다. 떨만하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출근길이 그런 거 없이도 얼마나 예민하고 킹받는 시긴데, 전장연 없이도 한없이 관용이 사라지는 아침들을 여럿 감내해 본 직장인으로서는

섣불리 정의로운 척을 하지 않는 게 더 공정해 보이고, 치우쳐 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논리 없이 마음 아파하면, 없어 보이잖아. 감성팔이에 매번 당하는 멍청한 사람 같은 거.


내 지인들의 불편에 마음껏 이입한 채 직접 본 적 없는 장애인들의 불편은 어느샌가 과소평가했던 것도 같다. 안 봐서 제가 잘 몰라서요..

제 지인들의 행복은 더 소중하잖아요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

타인의 불평으로부터 학습된 오만한 재단을 단숨에 무너뜨린 건 그 민폐스러운 앰프에서 쩌렁쩌렁 흘러나온 노래였다.


[전장연] 열차 타는 사람들_뮤직비디오 - YouTube

<노래 '열차 타는 사람들' 중>

우리는 모두 똑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 / 우리는 모두 똑같이 열차 타는 사람들 / 열차여 기다리오 사람이 여기 있소 / 차가운 승강장 앞에서 장애인 권리를 외치고 있소 /


글자로 보니 그 노래의 구슬픔이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 유튜브 링크도 첨부해 본다.


아무튼, 그때였다 내 눈에서 콸콸 눈물이 쏟아진 건.


주변 현장에 던져진 말진으로 보이는 기자들은 다들 묵묵한 표정으로 역사의 표정을 담고 있었는데, 별안간 장애인도 아닌 내 눈물샘이 난리가 난 거다.


선배가 보지 못하게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고, 주책이고, 유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닦으면 차오르고 닦으면 차오르던 눈물


어떻게 설명해야 그럴듯한 교감이 이뤄졌다 납득이 갈지 글을 쓰는 지금도 자신이 없다.


휠체어에 탄 채 저 노래를 부르다 눈물이 차오르는 어떤 장애인 분의 눈을 보고 그랬던가.


우리 모두 똑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이란 가사에 울컥했던가.

나는 장애인은 아닌데 나이 드는 사람들이긴 해서.

타자화해 싸잡으려던 사람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쉬이 섣부를 수 없게 된다.


내가 한 번도 제약받은 적 없는 공간에서 당연한 일을 제발 이제는 하게 해달라고 구걸하는 삶을 목격하곤 어딘가 서글펐던 것도 같다.


어느 봄날 저기서 소리 지르며 시민들에게 욕먹는 내 모습을 찰나에 상상해 봤던 것도 같다.

장애를 원해서 갖게 된 사람이 없으니, 나도 잠재적 장애인인데 그럼 내가 맞이할 수 있는 불행을  미리 가불해 슬펐던 건가. 그걸 공감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스케치나 빨리하고 '아우 불편해죽겠어요' 시민 인터뷰나 하나 따고 퇴각하려던 내 경솔함과

밀려오던 아직까지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서 해두는 기록


열차를 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삶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상상 속에서 섣불리 혐오해 버렸던가.


여기저기 쏘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고, 그 과정에서 제약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던 나다


저분들은 아니겠지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 부르는 구슬픈 노래가 울컥했던 건 그 외침이 어딘가 남일 같지 않아서였다.


나이 들고 싶어서 드는 사람이 없듯이, 장애가 생기고 싶어서 생긴 사람이 없을 텐데.


오늘 같이 날씨 좋은 4월 지하의 철도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들도


사실 그들의 자세한 요구사항과 정부의 대응 진척에 대한 바는 정확히 팔로우한 바는 없다.

그냥 눈물 났다. 누군가는 이런 걸 감성팔이에 당했다고 하려나.


"평범하게 열차를 타고 싶습니다.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네가 4호선에 살아봐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슬펐다. 지하철 좀 타게 해 달라는 그들의 외침이. 나는 한 번도 외쳐볼 생각도 한 적 없는 불편이라서


그런 면이 어딘가 여성인권을 외치는 이들과도 닮아있던 것도 같다. 밤에 무사히 귀가할 수 있을지 코웃음 치는 남성들이라던지.


지난 2015년 6개월 간의 짧은 영국 유학 시절, 그 나라와 한국의 차이로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 길가에 참 자주 보이네 ‘였다.


버스를 타고 노약자석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고, 길거리에서도 일반인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장애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에 특별한 동정의 시선을 주는 사람도, 인상 찌푸림도 없이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 외침을 외면하고 무작정 미워할 성정이 못되어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 슬픔을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뭉근해졌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 제목을 떠올려보는 어느 아침 출근길 취재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은교 속 대사. 젊음에 정상성, 늙음에 장애를 대입해 보고는 내 삶이었을 수 있었을 아찔한 풍경에 그저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 닦고 챙길 그림은 챙기고 여느 다른 기자들처럼 마음속으로 응원을 했는데, 응원이 됐을 리도 만무하고 여전히 매일 피해 입고 있는 시민들의 볼멘소리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도 나는 나를 눈물 흘리게 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오늘 하루를 글로서 다시 살아보며 기록해 본다.


섣불리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함부로 내가 저게 최선인 방법이냐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는 당신들의 외침에 젊은 비장애인 20대 여성도 공감합니다.


모두가 좀 더 자유로워지는 미래를 꿈꾼다.

타인의 슬픔을 쉽게 비웃지 않는 사회도


취재 후 돌아오던 길, 나는 철없게도 어느 노포 하나를 상상해 본다.


그곳엔 1시간 내내 묵묵부답 단호한 표정으로 대치하던 민머리의 지하철 경찰 공무원 분과 전장연 박경석 대표님이 어느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 한 테이블에 앉아있다.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불행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하고 농담 따먹기도 한다.


경찰 아저씨가 "당신네도 얼마나 답답하면 이러겠냐. 나는 지하철 매일 그냥 타는데 너네도 참 고생이다."


전장연 분들이 "당신도 지시대로 저희를 막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허허 저희 시끄럽죠. 돈 벌기가 힘들죠 얼마나 힘드세요"


저 상대방도 나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감각 속,


 조금 더 외면받고 있는 쪽의 삶을 덜 외면받는 쪽이 한 번만 더 상상해 준다면 세상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이고 얼마나 힘드세요’ 그런 알맹이 없더라도 말투로 진정성이 전해지는 따뜻한 말들 말이다


서로를 야리며 서로가 법을 위반했다 우기는 아수라장에서 그런 동화 같은 상상을 하는 나는 휴먼 시트콤 중독자이자 아직 어린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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