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5
우연히 '배달의 민족'의 창업가인 김봉진 님의 SNS 게시물을 보게 됐는데, 이 책에 대한 소개와 간략한 소감이 적혀 있었다. 몇 년 전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재밌게 했던 나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출신의 전설적인 창업가 '장병규' 의장과 그가 만든 게임 회사 '크래프톤'이 어떻게 배틀그라운드 같은 글로벌 흥행 게임을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장병규 의장이 직전에 창업한 회사는 게임회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게임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날 바로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마침 전문 연구요원 신분으로 3주 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으러 간 훈련소에 가게 되면서 훈련소 기간 동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진흙탕 싸움, 치열함의 연속
이 책은 10여 년 동안의 크래프톤 미팅 내용과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참고하여 크래프톤의 역사를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 10억 명의 인구가 즐긴 게임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는 책의 텍스트를 통해 다 표현 못할 정도로 많은 치열함과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데, 창업 성공 신화! 보단 크래프톤의 치열한 생존기를 읽은 기분이다. 성공이라는 화려함 뒤에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실패, 치열함이 있는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이 책을 통해 보고 접한 생생한 사례들은 창업은 고되고 힘들다고 단순히 생각하고 있는 내게 다시 한번 경각심을 심어줬다.
'제작과 경영의 분리', 'MMORPG 게임 제작의 명가', '투명한 경영과 원칙', '인재와 노동의 구분'
'6인의 베테랑 창업가들'
크래프톤 초기의 시작은 화려했다. 창업 멤버들과 비전 커리어 모두 완벽해 보이고 성공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오히려 참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다짐했던 원칙들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회사 구성원들이 경영진에 실망해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창업자들 간의 갈등도 심해져 절반 이상이 중도 이탈하게 됐다. 처음 게임 제작을 시작했을 때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예측한 사람이 있을까.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고 널리 알려진 장병규 의장도 감정에 휘둘려서 행동한 흔적이 보인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현명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도 보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처럼 책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는 입장에서 내린 결정을 고수할 수 있을까?
책 속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이는 경영진들은 10년 동안 죽어라 열심히 일하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한다. 이쯤이면 됐겠지, 이쯤이면 성공하겠지라며 책을 넘기고 넘겨도 계속 실패했다는 이야기만 반복된다.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노력해도 크래프톤은 실패를 거듭하다 우연한 기회에 기대하지 않았던 FPS 게임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혹자는 이걸 단순히 운칠기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앞의 치열한 노력과 과정이 있었기에 이 행운을 누릴 자격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본다.
배틀그라운드의 기획 과정과 성공신화가 주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MMORPG 게임 '테라'의 기획 과정과 기타 여러 게임들의 제작과 실패의 반복으로 점철된 크래프톤의 역사는 창업을 마냥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꿈꾸던 나를 다시 현실세계로 돌려놓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1) 포스트모르템(post mortem). 라틴어로 '죽음 후'란 뜻이다. 시체를 부검하고 사고 이후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을 말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업무를 마무리할 때 포스트모르템을 통해 그간의 과정을 살핀다. 다음 작업에서 장점을 더욱 살리고 실수나 아쉬웠던 점을 반복하지 말자는 의도에서다.
(2) 후지필름 고모리 회장의 말
진짜 승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이건 풀릴 것 같지 않다' '이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때에 역으로 무엇인가 극복해내려고 생각하는 것, 저는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노력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으로는 노력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3) GE 회장 잭 웰치의 말
신물 날 정도로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비전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언젠가는 하루 내내 너무도 많이 이야기해서 나 자신조차 지겨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비전을 완벽히 공유할 때까지는 끝없이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4) '게임회사 경영인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만든 장병규 의장의 PPT 내용 중
출시 게임이 1종이라면, 미완의 게임은 10종 정도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은 어렵다. 게임 개발자들은 출시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손익분기점 BEP를 넘기는 것도 힘들다. BEP를 넘기면 되는 것일까. 최소한 은행 이자율, 아니 게임 산업의 성장률을 넘어야 한다. 공중파나 케이블, 넷플릭스, 웹툰, 콘서트 행사에 투자하는 것보다 게임 제작에 투자해 얻는 이익이 커야 게임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게임은 BEP를 넘기고, 발생한 영업이익률이 은행 이자율보다 높고, 게임을 대체하는 산업의 성장률보다 높아야 적어도 "수치상으로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5) 김창한이 브랜든 그린에게 보낸 서신 중 '창조적인 일을 위한 리더십과 팀 매니지먼트' 내용 중
[리더의 조건]
- 리더는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 최고보다는 최선을 통해 일을 진행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더욱 잘하도록 만드는 게 낫다.
- 권위를 이용한 지시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심각한 일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 지시에 따라 일하지 않고 스스로 창조적인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말과 글은 화자의 의도보다 청자가 받아들이는 데에서 크게 좌우되므로, 권한이 있는 사람일수록 '내용' 자체보다 어떻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질 것인지를 더 오래 고민해야 한다.
- 리더에게는 자기 객관화 또는 자아성찰이 중요하다.
-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용장, 지장, 덕장 -->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며 신뢰를 쌓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