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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까 Jan 01. 2022

나 홀로 제주도에 #1

2021년 12월 31일, 오전 8시 30분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아침 일찍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8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긴장과 설렘이 내 몸을 들뜨게 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낭만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그것도 2~3일이 지나면 심심하고 사람이 보고 싶어 져서 함께 하는 여행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8년 전 부산에서의 난 그랬다.


그 이후로 여행은 함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 가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행을 결심했다.


서른을 맞아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작년 한 해 겪은 일들에 대한 회고와 비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관광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목적이었기에 책 두 권과 글을 쓸 때 필요한 노트북, 그리고 옷 몇 벌만 챙겨서 공항으로 향했다.


언제 타도 처음 타는 것처럼 설렘을 안겨주는 비행기 이착륙 후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언제나 한결같은 야자수가 날 반겼다.


미리 예약해둔 렌트카를 타고 공항 근처 바닷가의 카페를 갔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가 있었다. 주문한 '제주 유자 애플 차'를 마시면서 바다멍을 때렸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제주도에 온 게 실감 났다. 제주 바다와의 짧은 첫인사를 뒤로 하고 제주도에 오면 항상 들리는 고등어 횟집을 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구운 고등어 살과 김, 양념장을 같이 비벼 먹는 '고밥'과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등어회'를 백김치와 미나리, 그리고 이 집만의 특제 소스에 찍어먹으니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고등어 회를 먹으면서 작년에 왔던 날과 재작년에 왔던 때가 떠올랐다. 모두 다른 이유로 제주도에 왔었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감정으로 왔었다.


같은 장소인데 여러 감정과 추억이 공존한다고 생각하니 복잡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나이 든다는 감정인 건가? 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께, 3년째 매년 오고 있다고 하니, 고마워하시면서 내년에도 꼭 오라고 하신다.


내년에는 누구랑, 어떤 감정으로 올까?


제주도에서의 성공적인  끼를 해결하고 나서 애초 계획이었던 '청초밭' 가려다가 전날  잠을 설친  때문에 우선 숙소에 들러 잠시 쉬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유튜브의 '2021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 리스트를 들으니   마무리로 딱이었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중간에 에메랄드  바다가 나타났다. 풍경이 너무 예뻐 근처 길가에 차를 대고 내렸다.


빌딩으로 가로막힌 도심에서 벗어나  트인 바다를 보니 작년   동안 쌓인 답답함과 미련이 날아가는  같았다. 바다의 에메랄드 빛과 하늘의 푸른색, 그리고 해변 곳곳에 박혀 있는 현무암의 짙은 검은색이 그림 같았다.


한참을  놓고 바라보다 지도를 보니 관광지로 유명한 '세화 해변'이었다.


하늘에 구름도 많고 바람도 거셌지만 에메랄드  바다에 빠져 카메라 셔터를  번을 눌렀는지 모르겠다.  이상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눈과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차로 돌아왔다.


여운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린  30분쯤, 성산일출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성산일출봉과 차로 10 거리인 곳에 숙소를 정했다.  


 같은 1 여행가들을 위한 방이  되어 있는 곳이었고 위치도 새해  해를 보기에 제격이었다. 친절하고 신속한 리셉셔니스트 덕분에 빠르게 체크인을   방에 들어왔다.

기대만큼 방이 깨끗하고 포근했다. 세화 해변에서 찬바람을 많이 맞았는지 짐을 풀고 잠깐 침대에 몸을 기댔는데 바로 잠들어 버렸다.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배도 고파져서 미리 알아봐  전복 식당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댁 가는 길처럼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지나 식당에 도착했는데 어째 식당이 어두컴컴하다.


알고 보니 연말이라 장사를  하는 날이었다. 어쩔  없이 인터넷으로 블로그 리뷰 평이 좋은 갈치조림 식당을 찾아 그곳으로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가족 혹은 모임 단위로 많이 식사하고 계셨다. 이제 정말 조금 있으면 새해구나 실감이 났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제주도 갈치조림 요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전국이 9시만 되면 셧다운 되어   있는 곳이 없었다. 하는  없이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카라멜마끼아또  잔을 테이크아웃   방에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  침대에 기대어 커피를 마셨다.


2022 카운트 다운이 2시간 남짓 남으니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 사이에 먼저 연락을 해준다는  얼마나 감사한  느끼고 있는 요즘이라 정말 고마웠다. 여행하느라 밀린 답장을 모두 마무리한   해동안 고마웠던 사람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제  서른이라니.. 얼마 남지 않은 이십대라는 생각에 갑자기 센치해져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을 말들을 연말이라는 핑계로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


그래도 말하고 나니 부끄럽다기보단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에 이때 아니면 언제 할까 싶다. 마지막은 역시 가족이었다. 가족들과 새해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렇게 2021년을 마무리했고 2022년을 맞이했다.


제주도의 밤이 깊어갔다.



안녕, 제주도
고등어회 맛집 '부지깽이'



세화 해변
힙한 느낌의 1인 숙소 '플레이스 캠프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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