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스름한 새벽, 알람이 한 마디를 다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자 가장 하이라이트인 새 해 첫 해를 볼 수 있는 날이었기에, 눈을 뜨자마자 기대감에 정신이 맑아졌다.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마친 후 숙소 1층으로 나왔다.
로비는 벌써부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금 더 나와보니 이미 도로는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는 차들로 가득해 길이 막혔다.
다행히 숙소에서 성산일출봉과 일출이 잘 보이는 '광치기 해변'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전날 밤 미리 동선을 짜 놓았지만, 계획 따윈 집어치우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이들도 결국 나랑 같은 목적 이리라. 그렇게 제주도의 아침 공기로 폐를 가득 채우면서 15 분 정도 걸었을까, 성산일출봉을 끝으로 반듯한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치기 해변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변을 따라 일렬로 서서 바다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혼자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저마다 새 해 바람이 있겠지'
사람들의 새 해 소원은 무엇일까 혼자 상상하며 해가 뜨길 기다렸다.
지평선이 점점 불그스름해졌다.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다 누군가 떴다!라고 외쳤다.
2022년 첫 해의 순간이었다.
첫 해를 보는 순간 작년의 힘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해가 뜨고 1 시간 정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지난날들의 아쉬움과 반성, 그리고 새해 다짐으로 혼자만의 감성 타임(?)을 가졌다.
20대에는 내 주변의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것 같다.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었는데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연인, 친구, 가족 등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니 반성할게 많더라. 커리어 측면에서도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는가 등등 나 스스로의 성적표를 만들어보니 많이 아쉽고 부끄러웠다.
올해에는 지난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기를, 내년 첫 해가 뜰 때 후회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깐 쉰 후 제주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점을 먹으러 나왔다.
제주도에 오면 항상 먹는 해물뚝배기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갔다.
제주도에 오기 전, 성산일출봉 근처로 숙소를 정하면서 함께 봐 둔 카페였다. 시원하게 뚫린 통유리 창으로 성산일출봉과 제주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행 와서 읽으려고 챙겨 온 책과 노트북을 꺼내놓고 한참을 창 밖을 바라봤다.
이게 힐링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아무도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바다 멍을 때리다 책을 읽기를 반복하면서 하루 종일 카페에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고 날이 어두워질 땐 일기를 썼다. 맞다. 이전 글인 제주도 여행 1일 차다.
해가 지고 어둠이 성산일출봉을 완전히 삼켜버릴 때까지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새해 다짐, 독서, 바다 멍 때리기 삼박자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난 뒤 배가 고파졌다.
저녁으로는 갈치회와 고등어회가 유명한 인근 식당으로 갔다.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운이 좋게 한 자리가 남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까지 완벽한 하루였다.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없는 날이었다.
2022년 새해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