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7
오늘도 청첩장을 2개나 받았다.
올해에만 친한 지인들의 결혼식이 6개나 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니 친구들이 하나 둘 유부의 세계로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어렸을 때 철 없이 놀던 모습이 떠오르고 얼굴도 그대로다. 억양, 말투, 행동에 옛날 모습이 남아 있다. 오랜만에 보면 다들 "너네는 그대로다!"가 첫인사다.
하지만 많은 게 바뀌었다.
입에 들어가는 술이 소맥에서 와인과 양주로,
대화 주제가 학교 수업과 연애 얘기에서 직장과 재테크 얘기로.
더 이상 밤새 술 마시며 놀지도 않는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외면하고 싶어선지, 어릴 적 모습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면 자꾸만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 그렇게 철없던 옛날 얘기에 빠져있다 현실로 돌아오면 어느새 성숙해진 친구들이 어색하게 보인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어른이 뭐지?
스무 살이 되어서 술, 담배 할 수 있는 것?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
책임 질 가족이 생기는 것?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기도 낳은 연구실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하기 싫은 일도 하는 게 어른이다.'
한동안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은 내게 '내가 아직 철이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줬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배의 말도 어른의 정의를 포괄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나이가 많아도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을 보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거 같진 않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당한 방법으로 벌었거나 행동이 가벼우면 어른이라고 부르진 않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위해 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님을 떠올리면 어른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다 어른인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뭘까? 어른의 정의에 대해 국어사전과 어원에 대해 찾아봤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부족했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어른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어른의 기준에 대해 다룬 여러 글들과 영상들을 찾아봤다.
다들 어른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그중 가장 공감되고 납득이 되는 글을 가져와봤다.
http://www.n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85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9980433&memberNo=45564485
나에게 어른은 내가 본받고 싶고 따르고 싶은 사람, 능력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자기 말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모범이 되는 사람,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의 이미지였다.
내 주변에 그런 어른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아버지였다. 그리고 헬스장의 PT 선생님이 떠올랐다.
왜 두 분을 어른이라고 느꼈을까? 공통점을 생각해봤다.
성실함, 솔선수범
자신만의 신념
위기를 겪은 경험으로 생긴 단단함
잔소리와 강요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조언
남의 잘못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
가진 걸 주변에 베푸는 행동
가볍지 않음
쓰다 보니 몇 사람 더 떠올랐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드라마와 웹툰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태원 클래스'의 주인공 '박새로이'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인턴' 속 '로버트 드니로'
나이와 상관 없이 모두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그냥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와인과 비슷하다.
지속적인 관리와 오랜 숙성과정을 거친 와인만이 좋은 향과 맛이 나는 것처럼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아직 어른이라고 불리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부족하다.
부디 5년, 10년 뒤에는 좋은 향이 나는 와인 같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