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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까 Nov 03. 2020

스물여덟의 부산

2020년 9월 12 - 14일

"승객 여러분 저희는 방금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김포공항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잠들었던 나는 50분의 단잠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이번이 몇 번째지?'


20살이 되던 해, 부산으로의 첫 여행 이후 매년 1번 이상은 부산을 찾고 있던 나였다.

9번째? 10번째? 모르겠다. 그쯤 된 거 같다.

고맙게도 친한 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자칭 '부산 상남자' 동생이 운전해주는 차로 해운대 바닷가 앞에 위치한 별장으로 향했다.

빵! 빵! 여기저기 울리는 클락션 소리, 끼어들려는 차와 양보하지 않으려는 차들의 신경전을 보니 다시 한번 부산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사투리와 귀여운 색감의 부산 버스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앞바다, 서울을 떠나기 전 복잡했던 마음이 고향에 돌아온 듯 반갑고 편안해졌다. 돌이켜보면, 난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부산에 오곤 했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 가족, 그리고 나 혼자만의 부산 모두 각각의 모습으로 내 소중한 기억 한편을 장식하고 있다. 이번 부산 여행은 부산 출신 동생의 초대로 오게 되었다. 나 외에도 동생이 활동하고 있는 승마 동아리 사람들 5명도 함께 한다고 한다. 항상 익숙한 사람들과 왔던 부산 여행이었기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다들 쾌활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믿고 동생네 별장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승마 동아리 사람들이 합류하고 첫인사를 나누고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들 유쾌하고 성격이 밝아 걱정했던 것보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 잠시 혼자 바닷가 앞 카페로 나왔다. 좋다. 비 온 뒤 맑게 개인 하늘과 풍성한 구름이 좋고 막힌 가슴이 뚫리듯 탁 트인 바다가 좋다. 이곳저곳 추억이 깃든 해운대 거리가 좋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쌓인 추억이 많아서일까. 점점 감상에 젖는 시간이 좋아진다.


강릉, 인천, 전주, 제주도 등등 국내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나는 유독 부산이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같은 국적에 같은 언어를 쓰지만 미묘한 억양의 차이로 나는 이방인이 된다. 여기선 내가 했던 일이나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서울에서 온 손님이라는 이유 하나로 환대를 받으면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산에 처음 여행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좋았다. 바닷가를 따라 위치한 건물들이 화려했고 부산 특유의 사투리를 통해 전해지는 에너지가 좋았다.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고 바닷가에 뛰어들었으며, 밤바다를 향해 폭죽을 터뜨리고 자갈치 시장에서 어색한 사투리로 아주머니들에게 흥정을 했다.

고층 빌딩들과 아파트들로 둘러 쌓인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면 종종 시야가 막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차가운 건물 외벽에 부딪혀 금세 눈을 돌려버린다. 하지만, 부산은 바다가 한편에 자리 잡아 그런지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답답했던 내 마음도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래서 부산을 더 좋아하는가 싶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부산에 별장을 하나 사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는 승마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양산의 호포역에 있는 승마장에서 이틀 연속 승마를 했다. 승마 스케줄로 인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없던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부산에서의 승마 경험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게다가 부산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알게 되었으니 값진 시간이었다.

다음 부산 여행은 책을 가득 싣고 와서 바다가 보이는 이쁜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다.

저녁에는 부산 사람들만 있는 곳에 가서 돼지국밥과 회를 먹고 해가 진 후에는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바닷가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거닐고 싶다.

아직 부산을 떠나지도 않았으면서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며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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