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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육아일기

육아라는 소재의 산발적인 이야기 몇 개

by 재춘

#1

6월 8일. 28개월 된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은 날이다. 기독교적으로 세례라는 것은 본인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아세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제 28개월 된 아이가 본인의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본인의 신앙 고백이 아닌, 부모의 다짐 혹은 아이의 성장과정에 남기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의미가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유아세례를 받진 않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고, 부모님의 교육열(?)로 인해 기독교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러한 사유로 사춘기 시절의 나는 스스로에게 '모태신앙을 가진 크리스천(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비록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의 문턱을 단 한 번도 넘지 않았지만,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덕분에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 비행의 상한선(?)이 있었으며,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름의 선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유아세례가 훗날 아이에게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할까? 오늘의 한 페이지가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가치관의 형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저 아이가 기독교 안에서 선하고 배려할 줄 아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2

방금 전, 아이를 재우고 왔다. 이미 잠들어버린 엄마가 이불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아이와 내가 같이 누울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소파에 누우려 하는데, 아이가 '아빠 와~ 자리 있어요.'라며 나를 불렀다. 딱 봐도 자리가 없는데... 좁은 자리를 비집고 누워 아이 가슴을 토닥여주었다. 막 잠들려던 아이가 결국 좁아서 불편했는지 창가 쪽으로 가자며 나를 일으켰다. 아이는 나와 같이 코끼리 인형을 들고 이동하여 별도로 마련해 둔 제2의 잠자리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2년 전에는 엄마아빠 배 위에서만 낮잠을 자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밥 먹기, 양치하기, 옷 입기 등 모든 것을 혼자 하고 싶어 한다. 무조건적인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닌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가 됐다. 아. 존댓말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문장 끝에 '요'자를 붙이며 존칭 표현까지 하는 아이를 보면 참 신통방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3

오늘 타요버스 미끄럼틀의 사다리 위 발판이 깨져서 아이 발 뒤꿈치가 까지며 피가 났다. 이제 이 미끄럼틀과도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구나. 지인에게 받은 이 미끄럼틀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그 발판에 금이 나 있었다. 몇 번 테이프를 붙였지만, 아이가 자꾸 떼는 바람에 결국 금이 간 상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결국 아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발판이 구멍이 나듯 깨져버렸다. 아이 발을 간단히 치료해 주면서 이제 이 미끄럼틀과 이별해야 하는 날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오전에 있던 또 하나의 일,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했던 침대 가드를 약 2년 만에 해체하였다. 1년 전만 해도 부모님 댁에 가는 날이면, 이 가드를 전부 해체해서 싣고 다녔는데 이제는 정말 필요가 없어졌다. 꼭 필요했던 물건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잘 자라주는 아이에게 고마우면서도 그 물건들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참 소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립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 오후에 함께 했던 시간도 벌써 그립다. 육아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4

아이를 돌보는 중에 버릇없는 아이들을 만나면 화가 난다. 내 아이와 부딪혀 놓고 사과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형, 누나들을 보면 화가 난다. 오히려 28개월 된 내 아이가 그 형, 누나들을 보며 '형, 누나 먼저 가.'라며 양보를 한다. 자기는 부딪히고 넘어져 다시 일어나는 와중에 그런다. 참.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하면 보통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지만,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면 마음이 쉽지 않다. 내 아이가 세상 살아가며 손해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배려심 있고 예의 바른 아이들을 만나면 참 고맙다. 그리고 이런 두 부류의 아이들을 겪게 되면, 동시에 그 부모가 누군지 살피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내 맘 같은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만 만났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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