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는 찻집 '귀천'이 있다.
학생 때부터 마음이 힘들 땐 귀천에 갔다.
낮은 천장에 오래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 같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있었다.
엉덩이가 푹 꺼지는 오래된 소파에 대충 기대서
모과차를 한잔 시키고는 탁자에 있는 노트를 폈다.
노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까만 글씨들로 끄적끄적 녹아내려있었다.
그에 보답하고자 나도 부족한 펜대를 굴리다가
내 글의 부족함을 알고는
괜히 모과 건더기를 씹곤 했다.
찻집지기 목 여사님은 항상 그곳에 계셨고,
천상병 시인이 소풍처럼 다녀간 아름다운 이 세상도
항상 그 찻집에 가면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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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의 귀천은 이제는 그 자리에 없다.
그 자리는 재개발이 되어 크고 멋진 건물이 서있다.
그 시절 귀천을 지키던 목 여사님도 이제는 계시지 않는다.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자 여전히
새로 멀끔히 이전한 귀천을 찾는다.
예전의 그 자리와 그 시절의 귀천에 비해
지금의 이 자리와 이 시절의 귀천은 아직도 어색하다.
학창 시절부터 마음을 둘 공간과 오래 봐온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어른이 될수록 사라져 간다.
나이 들고 흰머리가 늘어가는 나와는 반대로
새단장을 하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하다.
어른이 될수록 속상한 마음을 둘 곳이 점차 없어서
스스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점점 더 소심해지는가 보다.
그리고 새단장을 하는 건물이 야속하듯이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질투하기도 하나 보다.
내가 요즘 소심한 이유는
귀천에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