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반성문

가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

by 조훈희

선생님께서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명확하진 않지만 지금 기억에 당시
친구들이랑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걸렸던 것 같다.

다같이 교무실에서 나와서 노트 앞뒤로 빼곡하게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반성문을 쓸지 고민했다.

첫마디를 '이러이러해서 잘못했고 죄송하다.'
라고 쓰고 나니 빈 공간이 너무 많았다.

반성문의 여백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가
촛불이 빛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 듯
시를 써서 여백을 아름다움으로 채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

그날 반성문에 쓴 이형기의 시 '낙화'는
내 엉덩이로 회초리를 수직 낙하하게 했다.

.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면
내가 써내려 갈 흰 종이에는

낭만적인 문구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았는데
더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글들만 쌓여간다.

이제는 문장을 읽는 시간도 아끼려
불렛 포인트와 숫자가 그 여백을 채운다.

글의 제목마저도 무슨무슨 건 으로
다들 인질처럼 건수도 하나씩 잡고 있다.

이제 서류에 '낙화'를 썼다가는

이 서류를 읽는 회사의 독자(?)분 들이
가야 할 때 아는 것 같으니 집에 가라고 할 것이다.

오늘도 그래도 낭만을 부릴 수 있었던
반성문을 생각하면서 계약서를 만든다.

그런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으로다가 접근하면 안 되지
자본적인 개념으로다가 나가야지.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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