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를 마시기 위해서는 빈병을 찾아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빈병은 하나에 30원씩 쳐줬고
콜라 한 병을 먹으려면 300원이 필요했다.
빈병 10개를 모으면 콜라를 마실 수 있다는
수학적인 계산은 간단했지만
물리적으로 논두렁 앞에 있는 시골학교에서
빈 유리병을 찾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한 시간에 한대 꼴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들은 경쟁적으로 병을 주웠다.
일부 영악한 아이들은 연합을 해서 같이 줍고
그렇게 얻은 콜라를 같이 나눠먹다가
누가 더 많이 마셨냐며 싸웠다.
더 영악한 아이들은 약자의 빈병을 뺐었고
더 간 큰 아이들은 빈병을 모아둔
매점의 빈병 창고를 시원하게 털었다.
매점 할머니는 기가 막히게 훔친 빈병을 찾아냈고
앞으로는 그 아이들이 가져온 빈병은 받지 않으셨다.
버스가 오기 전까지 학교 근처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한정된 빈병을 찾는 일은
치열한 전쟁이었고 매일 한두 명 정도만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콜라를 마실 수 있었다.
.
어른이 되어서도 다 같이 빈병을 찾고 있다.
단, '빈병'은 '돈'으로 조금 더 추상적이 되었다.
어디 하나 돈 나올 구멍이 없는지
연신 두리번거리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 돈 나올 구멍을 뺏어가기도 하고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같이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보자고도 한다.
혼자 돈 벌 궁리를 하는 건
마음은 편한데 몸이 불편하고
같이 돈 벌 궁리를 하니
이 사람이 내편인지 사기꾼인지
도무지 판단이 안 된다.
콜라처럼 시원한 한방이 터져주길 기대하지만
이제는 명확히 알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 시원한 한방이 터지려면
어린 시절 뙤약볕에서 빈병을 줍는 것보다
더 크고 잔인한 노력이 필요함을
그리고 이제는 그냥
몇 개 되지도 않는 내 빈병이나
뺏어가지 말아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