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옛사랑
누가 울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린 '옛사랑'을 들었다.
이 노래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
학교 앞의 오래된 레코드 바를 참 많이 다녔다.
잔잔한 기타 선율과
이문세 아저씨의 담담한 목소리
가끔씩 타닥 튀는 레코드 판의 음색
그리고 어두운 벽면에 가득 꽂힌 레코드 판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루어질 때
갓 스무 살을 넘긴 대학생인
우리의 마음은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첫 소절에 병맥주 뚜껑을 치익 따고는
조용히 병목을 부딪히고 강냉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강냉이를 열심히도 털었다.
고백했다가 호되게 거절당한 이야기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야기
곧 군대에 가는 이야기
과제와 학점 이야기
졸업 후 진로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러다가 서로 울기도 자주 울었고
그걸로 놀리기도 참 많이 놀려댔다.
사장님은 우리의 푸념이 재밌는지
웃으며 바라보시다가 너무 울고 놀리고 있으면
신나는 노래로 바꿔주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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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제는 모두 회사원 더하기 아저씨가 되었고
퇴근시간에 맞춰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방문했다.
철없던 대학시절 이야기를
전채요리처럼 살짝 꺼내서 서로 입맛을 보았다.
한참 뒤 사장님은 겨우 우리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오랜만에 왔다며 그 시절 매번 듣던
이문세의 '옛사랑'을 틀어주셨다.
예전과 똑같은 기타 선율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옛사랑'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의 불타는 사랑과 고백의 열정,
입대의 두려움과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
그 어떤 것도 지금 우리에겐 없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언가에 지쳐서 의자에 늘어진 채
옛사랑을 들으며 조용히 맥주만 마셨다.
'누가 울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노래가 중반에 접어들자 한 친구가 글썽였다.
우리는 놀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청승맞게 나이 먹고 왜 우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울먹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그 말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들의 눈물에 대해 서로 놀릴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옛사랑은
잠시 사랑을 나눈 이성이 아닌
평생 날 사랑해준 부모님이었다.
그 사랑을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고
어른이 다 되고 인생이 중반까지 와서야
겨우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옛사랑이 되어간다.
아저씨의 눈물과 옛사랑은
청년의 그것보다 한참이나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