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아저씨는 로봇처럼 머리를 밀었다.
내 머리보다 훨씬 커다란 쓰레받기처럼 생긴 빗을
내 머리통에 대고는 무자비한 이발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듯이 인정없이 밀어버렸다.
긴 머리가 잘려나가는 거울 속 내 모습 뒤로는
긴 소파에 다닥다닥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이제 막 국민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은 생각도 못한 채
이발소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김성모의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위로 한번 뒤로 한번 좌우로 한 번씩
이발기의 시원한 춤사위가 끝나면
키득거렸던 우리들의 머리와 표정은 똑같아졌다.
다음으로 파란색 타일이 닥지닥지 붙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헹구고 나면 드디어 중학생으로 완성되었다.
모두 똑같은 길이로 짧게 잘린
자신의 스포츠머리를 거울 속에서 확인하는 순간
어느 친구들은 군대를 가는 것처럼 슬프게 울었고
어는 친구들은 그동안 헤아려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땜통의 개수를 신기한 표정으로 헤아렸다.
그리고는 교복가게에서 모두 똑같은 스타일의
교복을 맞춰 입고 등교를 했다.
게 중에는 조금이라도 개성을 살리고자
교복 바지를 줄이고 와이셔츠 단추를 바꾸고
머리를 길러보는 용감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학교 정문에 매일 아침마다
불국사 입구 사대천왕처럼 서계신 선생님과
선도부실을 다정하게 지나고 나면
선생님께서 직접 깎아주신
단정한 머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똑같은 머리
똑같은 교복
목을 죄고 있는 넥타이
그것은 날 옥죄는 불편한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억눌린 개성이 표출된다는 대학교 시절마저
난 비슷한 머리와 옷을 유지했다.
심지어 그렇게 머리가 깎인 날로부터
거의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머리와 옷을 입고 산다.
나 역시 살면서 머리스타일의 외도를 시도했다.
머리를 길러도 보고 옥수수수염처럼 탈색도 해봤다.
다시 머리를 잘라서 이발기로 고속도로도 내보고
그것도 안돼서 아예 스님처럼 삭발도 했었다.
삭발로 부족해서 눈썹도 잘라보고
턱과 콧수염을 길렀다.
그러자 수염이 마치 머리처럼 수북하고
머리는 마치 수염처럼 면도가 되어있어서
사람들은 내 머리가 뒤집힌 줄 알았다고 놀렸다.
반바지 힙합바지 나팔바지 모두 입어보았지만
결국 난 짧은 머리와 교복 같은 정장으로 돌아왔다.
.
다시 이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화장품 판매를 위한 호객원
단과반 학원강사 보조
교육방송 토론 방청객
각종 행사장 안내요원
리서치 조사원
기업교육 보조원
시험 감독관
군인
그리고 지금의 회사원까지
내가 돈을 벌 수 있었던 수많은 수단들의 필수조건은
'용모가 단정한 자' 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는 생산수단에 최적화된
한 명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내 머리를 연필깎이에 넣고 돌리듯이
사춘기 시절부터 규격화된 블록에
잘 끼워서 맞추고 드륵드륵 깎았나 보다.
오늘도 그렇게 모인 블록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새로운 모양의 건물을 짓고,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밥도 먹고, 회의도 한다.
블록이 빠지면 비슷한 블록을 끼워 넣는다.
게 중 오래돼서 낡은 블록은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새로 위에 쌓인 새 블록의 무게에 쓰러지기도 한다.
어쩌면 네모 반듯하게 깎여있는 내 머리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블록과 가장 잘 맞도록
누군가가 오랜 시간 깎아내어 버린
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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