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왔으니 회사에서도 정치를 자알 하겠구먼?"
경력직으로 이직하려고 면접을 보던 중 면접관이 심각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정치 못해서 직장인하고 있습니다. 정치 잘하면 국회의원 해야죠."
면접관은 당황했고, 나는 실수했음을 직감했다.
'아 젠장, 그냥 회사에서 정치 같은 것 안 한다고 할걸'
회사에는 수많은 라인이 존재한다. 1차 라인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묶인다. 그다음에 2차 라인은 ‘쟤는 어디에 무슨 출신이야’라는 최초부터 근본이 없는 호주제도가 추가된다. 나는 우리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났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진짜 출신은 엄마 배속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팀 사람들은 나를 무슨 대학교 출신이라고 불렀고, 어느 팀에서는 나를 무슨 학과 출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어느 팀에서는 내가 무슨 팀 출신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엿장수 마음처럼, 같다 붙이는 사람 마음대로 생기는 2차 라인이 생기면 3차 라인은 제일 민감할 수 있는 종교, 정치성향 등으로 묶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이 사람이 인정받는 정도까지 서로 확인하면 그 라인은 서로 본드로 붙인 신발과 깔창처럼 상당히 탄탄해진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라인이 구성되면 그 라인 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임원이 그 라인의 대표가 되어서 우리 라인 잘 될 수 있도록 호소하고, 다른 라인은 안 될 수 있도록 호소한다. 이러한 호소는 마치 선거운동과 비슷하지만 사내정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와는 전혀 다르다.
사내 정치는 모두가 한 표씩 투표를 해서 대표를 뽑는 상향식 구성이 아니다. 반대로 대표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아래를 채워나가는 형식이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일수록 권력에 추종하고 복종할수록 윗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되는 하향식 구성이다. 그래서 부하직원은 자기 라인의 상사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시비를 가릴 수 없다. 그 라인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상사가 듣기 좋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어지간히 용기가 있는 부하직원이 아닌 이상 본인 라인에 정점에 있는 상사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껄끄럽다.
사내정치는 서로의 의견을 모아서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라인의 꼭대기에 위치한 상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직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사내정치를 하지 말라고 해서는 절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들부터 안 해야 사내정치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회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라인을 만들기 위해서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나는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자네 고향이 어디인가?"
"아버지는 고향이 충청도지만 지금 전라도에 계시고, 어머니는 고향이 강원도지만 서울에서 자라셨습니다. 처가는 어린 시절에는 경상도였지만 지금은 경기도에 사시며, 외가는 고조 이북에서 오셨습네다. 그리고 저는 나중에 꼭 제주도에 살아보고 싶습니다."
"자네는 어디 학교 출신인가?"
"제가 변변찮은 대학을 나와서요. 앗 죄송합니다.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자네 종교는 무엇인가?"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교회를 몇 번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천주교 셔서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세례랑 성체는 받았고, 군 시절 절에서 받은 법명도 있습니다."
"자네는 이번 선거에 무슨 당 찍을 거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당’을 찍겠습니당. 헤헤헤. ‘죄송합니당’을 찍을까요? 헤헤헤.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왔습니당. 헤헤헤헤"
난 오늘도 회사에서 하여튼 이상한 놈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회사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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