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 자네 지금 코피 나는 거 아니야?"
무거운 월요일 아침 회의시간, 오늘따라 유난히도 하얗던 과장님의 보고서에는 시뻘건 코피가 뚝 뚝 그리고 뚜욱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코피 사이로 보이는 팀장님의 눈망울은 과장님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아롱거렸다. 과장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보고서의 코피를 주욱 닦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조금 더 자기 관리에 신경 썼어야 하는데, 주말에도 계속 출근을 하다 보니 피곤했나 봅니다."
보고서에 한줄기 동양란처럼 길게 주욱 흘겨진 빠알간 코피 사이로 아름다운 웃음꽃이 피었고, 머지않아 과장님은 차장으로 승진을 했다.
나는 그날 전쟁터 같은 회의실에서 승리하는 파는 ‘신파’, 승진행 고속열차 티켓은 ‘동정표’라는 진리를 눈으로 보았다. 나는 그 배움을 토대로 회의 시간에 코피가 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코피는 지난주에 구입한 로또처럼 다른 사람들한테는 쉽게 터져도 나에게서는 터져주지 않았다.
매주 열심히 사무실에 앉아있어서 시간만 죽쳐서 그런지 도리어 배에 살만 찌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흘러넘쳤다. 더욱이 김 과장님 승진 때 이미 똑같은 수법을 알고 있는 팀장님께 이러한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코피는 레드오션임을 직감하고 ‘동정표’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퇴근시간이 되면 검은색 쉐도우를 눈 밑에 얇게 발랐다. 마치 지금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보이는 다크서클이 내 눈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저는 매일 이렇게 회사에서 제 한 몸을 불태운답니다.’라고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색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만취가 된 동료의 분탕질에 이 마저도 팀장님께 탄로 나게 되었다. 결국 난 기나긴 암흑의 세월을 겪게 되었다.
회사는 업무능력을 제외한 본인만의 노하우로 오랫동안 살아남는 사람이 많다. 이간질, 과잉충성, 갑질 그리고 남을 밟아서 나를 돋보이기 등 지금 생각해보면 동정심을 자극하는 코피는 귀여운 케이스였다. 그런데 회사생활을 해보니 능력 이외의 방법으로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과제를 처리할 수 있는 업무 능력은 거의 없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코피가 나는 것 밖에 없는데 매일 코피가 날 순 없으니 결국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회사는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모인 어린이들의 재롱잔치 무대가 아니다. 어떻게 잘 보일까 고민하는 시간에 자기가 맡은 업무만 잘하면 남에게 피해도 안 끼치고, 본인 스스로의 자존감도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상사에게 잘 보이게 될 것이다.
주임은 주임답게, 대리는 대리답게, 과장은 과장답게, 부장은 부장답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하고, 대표님은 부하 직원들을 대할 때 아첨하는 무리를 멀리 할수록 회사는 건실해지고 구성원들은 행복해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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