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 업무 안 해봤는데요? 그리고 제가 이 업무 담당자도 아니잖아요."
팀장님께서 회의 시간에 김대리에게 업무를 지시하자마자 김대리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팀장님께서는 깊은 한숨을 쉬시더니 바닥을 보셨다. 그리고서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고 말씀하셨다.
"그럼 이번 건은 당신이 맡아서 해"
이 아찔한 상황에서 나도 안 해봤다고 하면 결재 판이 누군가의 머리 위로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날 퇴근시간이 되자 자신은 담당자가 아니라고 팀장님께 말대답했던 김대리는 약속이 있다며 정시퇴근을 했고, 난 오늘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왜 나는 그 상황에서 거절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일찍 집에 못 가고 야근을 하고 있을까?’
‘왜 나는 그래도 그 동료에게 큰소리도 못 치는 걸까?’
'왜'와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분노를 가슴속으로 삭히며, 줄기차게 몇 년 동안 야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팀장이 되어 있었다..
'난 안 해 본 일이니 할 수 없다'는 수많은 김대리들이 만들어낸 거절의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든 ‘나’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주로 도맡아 하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리고 나 역시 스스로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팀장이 되자 이렇게 받는 일의 크기가 이제는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팀원들과 업무분장 회의를 하는데, 십 년 전에 유행이 지나도 훨씬 지난 김대리의 대사를 팀원이 똑같이 읊조렸다.
"저 이 업무 안 해봤는데요? 그리고 제가 담당자도 아니잖아요."
이 말을 다시 듣는 순간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면서 소리 높여 그 팀원에게 외쳤다.
“그럼 대통령은 그전에 대통령 해봐서 대통령 하냐?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업무 분장받고 태어났어?”
팀원들이 모두 집에 간 야밤에 외톨이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지난 과거에 내가 느낀 분노를 어느 한 직원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그동안 참고 일 했으니, 당신들도 나처럼 참고 일해'
라는 식의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를 외롭게 만들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내가 한 행동은 그동안 내가 받는 고통들을 나보다 약한 팀원들에게 풀고 있는 꼴이었다.
다음날 최대한 미안한 마음과 얼굴로 팀원들과 다시 회의실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가 맡은 업무가 회사와 팀에 어떤 이익인지와 개인이 해당 업무를 맡음으로써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보았다. 지금도 정기적인 업무로 모두 바쁘겠지만 내가 타 회사 자료를 수집해서 가이드라인을 잡아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대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주고, 박 과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보자 라며 업무를 구체적으로 배분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업무가 끝나면 힘들 테니 각자 일정에 맞춰 조용히 돌아가면서 하루씩 쉬자고 하였다. 다들 조금씩 힘들어 보였지만 동의하고 각자 자리에 가서 앉는다.
내가 그동안 느낀 불합리에 대해서 과거에 있었던 나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는 순간, 나도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과 똑같이 불합리를 행하고 있었다. 마치 도둑이 처음 물건을 훔칠 때에는 그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꺼려했으면서도, 크면서 보고 들은 것은 도둑질뿐 이라면 결국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도둑질을 하게 되는 꼴이었다.
도둑은 도둑질을 할수록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리더가 업무 지시에 대한 새로운 방식과 해당 업무에 고민하지 않고 나태하게 예전에 했던 대로 지시하는 순간 단순히 직급에 눌린 수많은 김대리들은 또다시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저 이 업무 안 해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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