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흥한 자, 카톡으로 망한다.

근거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하여

by 조훈희

"진짜 왜 저러시냐? 너무 하시는 것 아니야?"


회의시간에 차장님을 엄청 혼내는 팀장님을 보다 못해 몰래 핸드폰을 열고 동료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 동료는 평소에 시원하게 욕을 잘해서 이번에도 시원하게 팀장님 욕을 하면서 답장을 해주려니 했는데 의외로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이 녀석도 이번에는 많이 쫄았나 보네'라고 다시 핸드폰을 보는 순간 난 발끝이 저리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난 바보같이 그 카톡을 팀장님께 보냈고, 그 당시 카톡은 삭제 기능도 없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카톡의 1 은 사라지지 않았고 회의시간은 내 발을 지옥 불에 담가 놓은 것처럼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주면서 참 느리게도 흘러갔다.


회의가 끝나자 팀장님은 화장실을 가셨고 난 재빨리 팀장님 자리에 뛰어갔다. 다행히 팀장님 핸드폰이 책상 위에 놓아져 있었다.

카톡의 1 이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팀장님이 돌아오기 전에!

팀장님이 내 카톡을 읽기 전에!

내가 보낸 카톡을 지워야만 했다.

불행히 팀장님 핸드폰은 잠겨있었고, 그 몇 초 동안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핸드폰을 부셔버릴까?’

‘커피를 쏟아버릴까?’

‘방수되면 어떡하지?’

‘아 그냥 다시 부술까?’

‘창문 밖으로 던질까?’

도저히 생각이 정리가 안 되고 어쩔 줄을 몰랐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팀장님이 나타나기 전에 아래층 화장실로 도망갔다. 변기 위에 앉아서 고민하다가 팀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참 뒤에 팀장님 카톡 대화창의 1은 사라졌고, 난 자리에 돌아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 대피해 있었던지 한 시간이 지났다. 너무 목이 말랐던 나는 동료에게 물 한잔만 화장실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엉겁결에 화장실에 종이컵을 들고 나타난 동료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았다.


"푸하하하 심각한 건 알겠는데 너무너무 웃기다."

동료는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더니 말했다.

"근데 너 화장실에서 살 거냐? 빨리 나와서 사죄해"

난 숨죽이고 자리에 돌아가서 조용히 앉았고, 곧 팀장님의 카톡이 왔다.


"조 대리 어디 갔어?"

난 그제야 파티션 위로 머리를 스르르 내밀고

"팀장님 저 자리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팀장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커피 한잔 할까?"


이것은 마치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풀만 먹고 일만 하고 살아온 맑은 눈망울을 가진 소에게 이제 그만 도살장으로 가자는 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적막과 함께 내 눈앞에 놓인 유난히도 새까만 아메리카노는 사약처럼 보였다.


"어명이요! 대역죄인 조 대리는 당장 사약을 들라!"라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온갖 상상이 지나가자 팀장님은 내 안부를 여쭤보셨다.

"너 제정신이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은 계속 내 정신 상태의 안부를 여쭤보셨고, 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때 커피숍을 지나가던 옆 팀의 팀장님이 심각해 보이는 이 광경을 목격하시고는 팀장님께 왜 그러는지 자초지종을 물으셨다. 상황 설명을 다 들은 옆 팀 팀장님은 내가 팀장님께 보낸 카톡을 보시더니

"김 팀장 얘 그래도 남들한테 팀장 얘기할 때 존댓말 하네. 그 정도면 됐지 뭘 그러냐? 원래 없을 땐 나라님도 욕 하는 거야"

라며 쿨내를 진동하며 사라지셨다.

옆팀 팀장님 덕분에 팀장님은 조금 화를 푸셨고

"올라가서 일이나 해. 인마!" 라며 날 지옥에서 풀어주셨다.


그날 이후 난 이메일, 사내 메신저, 카톡과 같은 전자 서면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든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탕비실, 심지어 회사 근처에서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 회사에서 화가 날 때 어떻게 푸는가?


이면지를 꺼내서 나만 볼 수 있게 조용히 여러 가지 글씨와 그림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파쇄기에 갈아버린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내가 조용히 이면지에 뭘 쓰고 있거나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건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다. 파쇄기에 갈아버리기 전까지 절대 내 이면지를 보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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