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구백사십구년 포르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는 뇌의 전두엽 일부를 잘라 내어 정신병을 치료하는 백질 절제술에 관한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이 수술을 받은 정신질환자들은 폭력성과 불안이 사라지고 조용하고 온순해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지능이 떨어지고 평생을 무기력하게 살아야 했다. 뇌의 앞이마엽겉질은 감정의 깊이를 조절하고 추상적 관념과 판단력을 관장하는 부위다. 무엇보다 이 부위는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에가스 모니스의 끔찍한 수술이 증명한 명제는 단 하나다. 인간의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면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불안이 사라진 인간은 더 이상 내일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이 완벽하게 차단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불안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나는 지팡이 끝에 닿는 감각과 귓가를 스치는 소리 그리고 코끝을 맴도는 냄새를 통해 끊임없이 일 초 뒤의 미래를 상상하고 계산해야만 안전하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불안은 나를 보호하는 가장 날카로운 감각의 촉수다. 내 이름은 엘리야. 잃어버린 시각 대신 극대화된 후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으로 세상의 이면을 해부하는 탐정이다. 내 발치에는 나의 완벽한 눈이자 가장 충직한 동반자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탱고가 규칙적인 숨을 내쉬며 엎드려 있다.
오후의 빗소리가 창문을 무겁게 때리던 시간이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발소리의 보폭은 좁았고 구두 굽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에서 깊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몸에서는 젖은 우산에서 나는 비 냄새와 함께 아주 짙고 무거운 백합 향기가 났다. 장례식장을 갓 빠져나온 사람의 냄새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지연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며칠 전 작업실에서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난 천재 조각가 민우의 친동생이었다.
지연은 경찰이 오빠의 죽음을 단순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자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조각가 민우는 평소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극심한 불안 장애와 미래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다음 작품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신경안정제에 의존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민우가 기적처럼 변했다고 했다. 그는 갑자기 모든 불안을 내려놓은 듯 평온해졌고 더 이상 화를 내거나 작품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았다. 지연은 처음에는 오빠가 드디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무언가 기괴했다. 민우는 하루 종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실없이 웃기만 했고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조각들은 과거의 천재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작업실 한가운데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나는 탱고의 하네스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연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시 외곽에 위치한 조각가 민우의 작업실로 향했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작업실 문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흙냄새와 대리석 가루의 매캐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시각이 닫힌 나에게 이 공간은 냄새와 질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와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접고 장갑을 벗은 뒤 텅 빈 작업실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조각은 형태를 가진 침묵이다. 나는 조각가의 과거 작품들이 진열된 선반 위로 두 손을 뻗었다. 차가운 흙과 돌의 표면을 쓸어내리자 그의 손길이 남긴 감정의 파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과거의 작품들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깊게 파인 굴곡과 비대칭적인 형태 속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과 세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의 완벽한 상징이었다.
하지만 작업실 중앙에 놓인 최근 한 달 동안 만들어진 작품들에 손을 대는 순간 나는 깊은 위화감을 느꼈다. 흙의 표면은 병적으로 매끄러웠고 형태는 완벽한 구형이거나 단순한 원기둥에 불과했다. 어떤 철학적인 고민도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감정과 추상적 사고를 관장하는 뇌의 특정 부위가 완전히 스위치를 꺼버린 사람의 손에서 나온 공산품 같았다.
나는 조각상에서 손을 떼고 작업실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축축한 흙냄새 사이로 아주 이질적이고 화학적인 냄새가 나의 후각을 예리하게 자극했다. 그것은 예술가의 작업실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냄새였다. 고농축 클로르헥시딘 소독약의 냄새와 국소 마취제로 쓰이는 리도카인의 희미한 잔향. 그리고 뇌파 검사나 초음파 시술을 할 때 피부에 바르는 투명한 겔 특유의 합성수지 냄새였다. 나는 지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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