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의 그림자와 고양이의 무덤.

by 김경훈

시각이 닫힌 세계에서 공간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기의 흐름과 냄새를 읽어내는 일이다. 나의 세계는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그 어둠은 결코 비어있지 않다. 수만 가지의 소리와 촉각 그리고 냄새가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내 이름은 엘리야. 남들이 눈으로 보고도 지나치는 진실의 이면을 감각으로 짚어내는 탐정이다. 내 발걸음의 방향을 완벽하게 통제해 주는 안내견 탱고가 젖은 아스팔트 위를 일정한 보폭으로 걷고 있다. 녀석의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은 나의 심장 박동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심 외곽에 자리 잡은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축축하고 낡은 종이 냄새와 함께 아주 이질적이고 짙은 동물적인 체취가 나의 후각을 덮쳤다. 그것은 개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냄새다. 은밀하고 독립적이며 아주 가벼운 발소리를 숨기고 있는 생명체들의 냄새.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머스크 향과 마른 먼지 냄새가 건물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고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걷는 사람의 발소리였다. 그녀의 몸에서는 은은한 캐모마일 차의 향기와 오래된 양피지 냄새 그리고 수많은 고양이의 털에서 나는 따뜻한 체취가 섞여 났다. 그녀는 자신을 이 사립 고양이 역사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기록 보관자인 서아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호흡은 얕고 불규칙했다. 슬픔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사람 특유의 시큼한 아드레날린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져나갔다.


그녀가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며칠 전 박물관 관장인 신 박사가 자신의 서재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칠십 대의 노령인 신 박사가 평소 앓고 있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해 자연사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서아는 신 박사의 죽음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 박사가 죽기 직전까지 매달려 있던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와 박물관의 소유권을 둘러싼 내부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나의 감각을 빌려 진실을 밝혀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탱고의 하네스를 잡고 서아의 안내를 받아 신 박사가 사망한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서재 문을 열자 완벽하게 통제된 습도 속에서 오래된 서적들이 뿜어내는 바닐라 향기 같은 낡은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적어도 열 마리 이상의 고양이들이 머물고 있는 듯 미세한 숨소리와 털이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탱고는 훈련받은 안내견답게 고양이들의 도발적인 하악질 소리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나를 서재의 중심인 낡은 참나무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서아는 신 박사가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고양이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 박사는 단순한 애호가가 아니라 인류와 고양이의 공생의 역사를 추적하는 권위자였다고 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인류와 고양이의 인연은 아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르단 강 서안의 예리코와 키프로스 섬의 신석기 유적에서는 인간의 유골과 함께 고양이의 뼈가 발굴되었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시작되고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에 쥐들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인간의 주거지로 들어와 공생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가장 오래된 증거다.


인간은 그 이후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이천 년 전부터 아프리카 야생 고양이를 길들였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다산과 치유 그리고 삶의 쾌락을 관장하는 바스테트 여신의 화신으로 여기며 숭배했다. 고양이가 죽으면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거대한 고양이 묘지에 묻었고 고양이를 해치는 는 사형에 처할 정도로 극진히 대우했다. 서아의 목소리는 오래된 전설을 읊는 음유시인처럼 슬프고 경건했다.


이집트의 고양이들을 세계 곳곳으로 퍼뜨린 것은 이집트와 페니키아 그리고 히브리의 뱃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쥐가 배에 실린 식량과 귀중한 화물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고양이들을 싣고 바다를 누볐고 이 항구 저 항구의 교역 상대자들에게 고양이를 전해주었다. 유럽에 고양이가 들어온 것은 기원전 구백 년 무렵이었고 중국은 시경에 고양이를 뜻하는 글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나라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 고양이가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귀중한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승려들이 함께 들여온 것이 시초였다. 일본 역시 헤이안 시대에 고려인들을 통해 고양이가 전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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