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100도의 스턴트맨
촬영장 바닥에는 모래 먼지가 훅훅 날렸다. 화약 터지는 매캐한 냄새와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갈리며 내는 비릿한 고무 냄새가 진동했다. 스턴트맨 오는 흙바닥에 나뒹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컷, 오케이. 감독의 확성기 소리가 찢어지듯 울렸다. 오는 무릎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아스팔트에 쓸린 팔꿈치에서 뜨거운 피가 배어 나와 셔츠 소매를 적시는 축축한 감각이 느껴졌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아파서 우는 것은 사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우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오의 초능력은 비극적이었다. 그의 눈물샘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섭씨 100도의 펄펄 끓는 물이었다. 슬픔이나 고통을 느껴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각막이 익어버릴 듯한 열기가 차오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면 피부가 녹아내리며 삼도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오는 어릴 적부터 슬픔을 거세당한 채 살았다. 아무리 억울하게 매를 맞아도,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도 그는 눈을 부릅뜨고 헛기침을 하며 눈물을 말려야 했다. 감정을 터뜨리면 얼굴이 타들어 가는 저주받은 몸뚱이. 그래서 그는 감정 없이 몸만 굴리면 되는 액션 스턴트맨이 되었다.
다음 씬 갈게요. 주연 배우 감정 씬입니다. 조감독의 목소리에 현장이 분주해졌다. 주연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섰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처절하게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액션. 감독의 신호가 떨어졌지만, 주연 배우의 눈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그는 억지로 안면 근육을 일그러뜨리며 끅끅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모니터로 전해지는 감정은 얄팍했다. 컷. 다시 갈게요. 안약 좀 넣어주세요. 스태프가 달려가 안약을 넣었지만, 주연 배우의 눈에서 흐르는 차가운 인공 눈물은 처절한 감정을 담아내기엔 너무나 가벼웠다.
테이크가 열 번을 넘어가자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대본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감정이 안 살잖아, 감정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런 날것의 슬픔이 없다고. 감독의 짜증 섞인 고함에 촬영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때, 구석에서 상처에 붕대를 감고 있던 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감독을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낡은 워커 굽이 흙바닥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감독님, 클로즈업 샷이라면 제가 대역을 하겠습니다. 오의 건조한 목소리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쏠렸다. 감독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액션 대역이 감정 연기를 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대관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감독은 턱짓으로 카메라 앞을 가리켰다.
오는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슬픔을 쥐어짜 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지난 30년간 억눌러왔던 것들, 화상 자국이 두려워 삼켜야 했던 서러움, 오늘 하루 종일 아스팔트를 구르며 느꼈던 비참함을 아주 조금만 열어주면 되었다. 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후읍, 후.
순간, 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눈가에서부터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내 그의 눈에서 투명하고 묵직한 물방울이 맺히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치이익. 눈물이 피부에 닿자 삼겹살이 불판에 닿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났다. 끓어오르는 눈물이었다. 100도의 눈물이 얼굴을 태우며 지나간 자리에 시뻘건 궤적이 남았다. 극심한 고통에 오의 입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진짜 고통과 진짜 슬픔이 뒤엉킨, 완벽하고 처절한 오열이었다. 눈물에서 증발한 하얀 수증기가 그의 얼굴 주변을 감쌌다.
컷. 오케이. 완벽해. 감독이 기립 박수를 쳤다. 얼굴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그 연출,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미쳤어, 정말 미쳤어. 감독은 오의 화상 입은 뺨을 보며 특수분장이 기가 막힌다며 감탄했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오는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눈물과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그의 코끝을 맴돌았지만, 그는 비로소 소리 내어 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오는 영화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감정 스턴트맨이 되었다. 슬픔을 참아야 했던 사나이는 이제 슬픔을 태워 돈을 버는 가장 뜨거운 배우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