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러스

by 김경훈

보보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바뀐다.

무채색의 일상에 탄산이 터지듯 상쾌한 리듬이 깃든다.

그녀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반응하는 것은 언제나 코다.

레몬 같기도 하고, 금방 짠 자몽 같기도 한 향이 보보의 등장을 예고한다.

사람들은 그를 종종 ‘인간 비타민’이라 부르지만,

감각의 분해능이 조금 더 정밀한 이들에게는 ‘인간 시트러스’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시트러스 향이란 참으로 명료하고도 정직하다.

베르가못, 라임, 오렌지, 자몽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입안이 반응하고,

머릿속에는 쨍한 햇살 아래 피크닉 담요가 펼쳐진 이미지가 그려진다.

이 향은 복잡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 직관적 쾌활함은 보보라는 사람의 기질과 기막히게 닮아 있다.

그녀는 감정의 중첩 없이 명료하며, 해석 없이도 이해되는 드문 사람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

향으로 환산하면 단연 시트러스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우리에게 겨울의 상징으로 익숙한 귤과 감귤류의 향은, 서양에서는 여름의 정서로 작동한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의 해안,

프랑스의 프로방스나 포르토피노 항구는 이 향을 여름의 햇살과 연동시킨다.

다시 말해, 보보의 향기는 계절과 국경을 넘어 작동하는 범감각적 언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마치 지중해의 어느 햇살 좋은 테라스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기후이며, 이동형 풍경이다.


향수의 세계에서 시트러스 계열은 ‘탑노트’라는 위치를 점유한다.

향수 병을 열고 처음 맡는 순간, 강하게 퍼졌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인상.

그러나 그 찰나의 인상이 전체 향의 구조를 결정짓는다.

보보도 그렇다.

그녀의 등장은 언제나 선명하고 빠르다.

그러나 그 지속은 강요되지 않는다.

오래 머물기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활력을 남기고 가볍게 물러선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쾌한 잔향을 붙잡은 채,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무게 있는 향수에도 시트러스 노트는 감초처럼 등장한다.

지나치게 진중한 향은 단조롭고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기에,

시작을 시트러스로 열어주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 긴장 완화이자 감각의 리듬 조절이다.

마찬가지로, 무겁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보보는 경쾌한 시트러스 노트로 작용한다.

삶이라는 무게감 속에서 그녀는 잠시 그 무게를 잊게 해주고,

감정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오늘은 그 향이 유난히 그립다.

삶의 밀도에 눌릴 때, 보보는 언제나 경쾌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녀의 향은 기억 속에서도 휘발되지 않고,

감정의 깊은 층위에서 여전히 은은하게 작동한다.

어쩌면 사람도 향처럼, 존재의 구조를 분석하고 감응할 수 있는 감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보는, 그런 분석을 가장 쉽고도 즐겁게 허락해주는 ‘사람이라는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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