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파리의 유령, 딥티크 오르페옹과의 하룻밤

by 김경훈

세상에는 향수라기보다 ‘이야기꾼’에 가까운 친구들이 있다.

오늘 만난 딥티크의 ‘오르페옹’은 그중에서도 가장 세련된 입담을 자랑하는 1960년대 파리에서 온 유령 같은 존재다.

이 친구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 지금은 사라진 ‘오르페옹’이라는 이름의 바(Bar)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 수다스러운 유령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짜일지, 아니면 그저 잘 만들어진 허구일지, 비판적인 청자의 자세로 귀(코)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만남의 시작은 날카로운 한마디와 같다.

쌉쌀한 주니퍼 베리가 톡 쏘며, 마치 잘 만든 진토닉 한 잔을 건네는 듯하다.

시끄러운 음악 대신, 얼음과 잔이 부딪히는 청명한 소리로 공간을 장악한다.

이것은 오르페옹의 첫인사다.

“자, 내 이야기에 집중할 준비는 되었나?”라고 묻는 듯한, 지적이고도 예리한 도입부다.


곧이어, 이야기의 본 무대가 펼쳐진다.

윤이 나도록 잘 닦인 시더우드의 향기가 공간의 뼈대를 세운다.

수십 년간 수많은 이들의 팔꿈치가 스쳐 갔을 바의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 위로, 새하얀 분가루 같은 파우더리 노트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바에 모인 멋쟁이 여인들의 화장품 냄새였을까, 아니면 자욱한 담배 연기가 파우더리하게 표현된 것일까.

여기에 슬쩍 고개를 내미는 재스민의 관능적인 향취와,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는 통카빈의 달콤함이 더해진다.

나무, 술, 여자, 그리고 늦은 밤의 공기.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매우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인 현장의 묘사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실례지만 오르페옹 씨, 정말 60년대 파리의 바가 이렇게 깔끔하고 ‘비누’ 같은 냄새였단 말인가?” 이 향기는 거칠고 퇴폐적인 밤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모범적이다.

마치 아주 비싼 호텔의 욕실에서, 최고급 우든 가구 위에 드라이 진을 살짝 흘린 듯한 냄새다.

어쩌면 오르페옹은 과거를 미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독한 숙취와 담배 쩐내는 쏙 빼고, 가장 낭만적인 순간만을 편집해 들려주는 ‘전문적인 추억 조작꾼’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딥티크 오르페옹은 향수라는 액체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공간’이자 ‘시간’이다.

비록 그 이야기가 완벽한 사실이 아닐지라도, 듣는 이를 순식간에 60년대 파리의 어느 바로 데려다 놓는 힘을 가졌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을 감각하는 이에게, 이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후각적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경험이다.


오르페옹은 피부 위에 뿌리는 향수가 아니라, 상상력 위에 짓는 작은 바(Bar)와 같다.

비록 그곳이 실제보다 조금 더 깨끗하고 낭만적으로 미화되었을지라도, 이런 멋진 거짓말이라면 기꺼이 몇 번이고 속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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