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수도승의 일탈, 이솝 휠(Hwyl)

by 김경훈

세상에는 이름과 실체가 전혀 다른, 그래서 더 흥미로운 존재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이솝의 ‘휠(Hwyl)’은 그 대표적인 예다.

‘휠’은 웨일스어로 ‘벅차오르는 열정과 에너지’를 뜻한다는데, 정작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300년 묵은 편백나무 숲의 고요함이다.

과연 이 친구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수도승인 걸까, 아니면 고요한 숲의 탈을 쓴 열정가인 걸까.

그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그가 이끄는 명상 시간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명상의 시작은 생각보다 엄격하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종소리 대신, 톡 쏘는 타임(Thyme)과 핑크 페퍼의 향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여기에 끈적한 나무 수액 같은 엘레미의 향이 더해져, 세속의 잡념을 끊어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이는 마치 “지금부터 명상을 시작할 테니, 한눈팔 생각은 추호도 말게”라고 말하는 근엄한 스승의 목소리와 같다.


잠시 후, 눈을 감은 채 그의 인도를 따르자, 깊고 오래된 숲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이 명상의 핵심, 바로 축축한 사이프레스(Cypress), 즉 편백나무의 향기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나무들의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 아래, 마른땅의 냄새를 닮은 베티버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프랑킨센스(유향)의 스모키 함이 더해져, 이곳이 단순한 숲이 아니라 신성한 사원임을 깨닫게 한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호흡이 깊어진다.


그런데 완벽한 평온의 순간, 엉뚱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이름이 ‘열정’인 친구가 이끄는 명상인데, 정말 이렇게 고요하기만 할까?’ 이 짙은 연기는 과연 사원에서 피우는 향일까, 아니면 어젯밤 이 수도승이 숲 속에서 몰래 벌인 비밀 파티의 흔적일까.

그의 고요한 등 뒤로, 쿵쿵거리는 베이스와 현란한 조명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웃지 못할 상상이 피어오른다.

이름과 향기 사이의 이 엄청난 간극이야말로, 이 친구의 진짜 매력이다


이솝 휠은 완벽한 명상 파트너다.

뿌리는 순간, 복잡한 도시 한복판을 고요한 사원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그의 이름 ‘휠’은 그 고요함이 그저 표면일 뿐이며, 그 안에는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는 뜨거운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조용한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열정을, 혹은 열정적인 사람의 내면에서 갈구하는 평온을 대변한다.

그의 향기에 집중하면, 가장 고요한 곳에서 가장 뜨거운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아마도, 낮에는 명상을 하고 밤에는 춤을 추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수도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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