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엑소시즘인가, 법치주의의 번아웃인가

by 김경훈

2026년 3월, 일본 도쿄에서 들려온 소식은 그야말로 종교사와 사법사를 통틀어 역대급 ‘매운맛’이다.

도쿄고등재판소가 옛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대한 해산 명령을 유지했다는 소식이다.

법인격 박탈에 재산 청산까지, 이건 뭐 종교단체에 내리는 사법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판결의 뒷맛이 꽤 씁쓸하다.

마치 설탕인 줄 알고 넣었는데 미원이었을 때의 그 기분이랄까.



형법은 휴가 가고, 민법이 칼을 들다?


이번 판결의 가장 기묘한 점은 ‘민법상 불법행위’만으로 한 단체의 숨통을 끊으려 한다는 것이다.

원래 국가가 특정 종교를 없애려면 ‘명백한 형사 범죄’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건 마치 주차 위반 딱지 몇 번 뗐다고 자동차를 압류해서 고철로 만들어버리는 격이다.


“아니, 형사 판결도 없는데 일단 해산부터 시키고 보자니요?”

법조계에서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칼을 너무 일찍, 그것도 엉뚱한 용도로 휘둘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들끓는 여론이라는 파도에 사법부가 서핑보드를 올리고 즐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법적 엄밀함보다는 대중의 박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정치적 타협’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연좌제’의 화려한 부활: 아베, 범인, 그리고 수만 명의 신도


이 사태의 시작점인 아베 전 총리 암살 사건을 다시 떠올려 보자.

이건 분명 한 개인의 뒤틀린 원한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데 범인의 개인적 범행을 해당 종교 전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연결 짓는 논리 비약은 정말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근대 사법의 대원칙인 ‘자기 책임의 원칙’은 어디로 갔을까?

한 사람의 일탈 때문에 수만 명의 신념이 담긴 공동체를 통째로 증발시키는 건,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한 ‘현대판 연좌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범인이 “나 사실 그 단체 때문에 화났어!”라고 한마디 하면, 그 단체는 법적 생존권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걸까?



‘인지전’의 늪: 알고리즘이 빚어낸 ‘공공의 적’


더 무서운 건 이 판결 뒤에 숨은 ‘인지전(Cognitive Warfare)’의 그림자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SNS상의 알고리즘과 가짜 뉴스가 이 이슈를 여론 공작의 땔감으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자극적인 정보 파편들이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해당 교단은 소명 기회도 제대로 못 얻은 채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만약 사법부의 판단마저 이 ‘좋아요’와 ‘공유’가 만든 가상 현실에 오염된 것이라면, 이건 법치 국가로서 심각한 시스템 에러이다.

사법부가 판결문 대신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순위를 보고 있는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탈리아의 인권 단체 ‘비터 윈터’는 이 판결이 불러올 ‘도미노 현상’을 경고한다.

‘반사회성’이라는 모호한 잣대가 전매특허가 되면, 다음 타겟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법치주의의 진짜 가치는 다수가 손가락질하는 소수의 권리도 법대로 보호하는 데 있다.


다수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소수를 제물로 바치는 ‘사회적 처형’은 중세 마녀사냥으로 족하다.

2026년의 사법부는 부디 대중의 박수 소리보다 법전의 무거운 침묵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법의 이름으로 엑소시즘을 행하기엔 우리 인류의 지성이 너무 많이 업데이트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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