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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언덕 위를 걷는 작은 거인

by 김경훈

발을 내디딜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아무것도 없는 땅', 나미브 사막의 거대한 모래 언덕 위에 리트리버 탱고가 서 있었습니다.

탱고는 사막의 건조한 바람 속에 섞인 미세한 수증기의 냄새를 맡으며, 누군가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행군을 지켜보고 있었죠.


그 곁에는 사막 탐험가 '레오'가 지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마실 물이 바닥나고 끝없는 모래 폭풍에 길을 잃자,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탱고, 여긴 지옥이야.

나무도 바위도 가루가 되어버리는 이 척박한 땅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내 운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그때, 탱고가 레오의 옷자락을 살짝 물어 당기며 모래 위를 기어가는 작은 검은 점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딱정벌레, '거저리'였습니다.


"레오, 저 작은 친구를 보세요.

거저리에게 이 300미터 높이의 모래 언덕은 사람으로 치면 에베레스트의 두 배나 되는 높이죠.

하지만 저 딱정벌레는 매일 새벽, 해가 뜨기 전 그 거대한 산을 오르기 시작해요."


레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작은 곤충의 움직임을 주시했습니다.

거저리는 죽을힘을 다해 경사면의 가장 높은 끝에 다다르더니, 갑자기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물구나무를 섰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을 활짝 폈죠.


탱고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보세요.

몸을 아래로 숙이고 등을 펼치면, 공기 중에 떠다니던 안개의 수증기가 등에 있는 돌기에 조금씩 달라붙기 시작해요.

그렇게 모인 작은 수증기들이 마침내 커다란 물방울이 되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면, 거저리는 그 물방울을 입으로 받아 마신답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 지혜죠."


레오는 물구나무를 선 채 생명의 단비가 맺히길 기다리는 작은 딱정벌레의 뒷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탱고는 레오의 곁에 앉아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탓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만큼 했으면 최선을 다한 거야'라며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도 거저리는 매일 에베레스트를 넘으며 지혜를 발견해내고 있어요.

어려운 상황은 당신을 무너뜨리러 온 게 아니라, 당신 안에 숨겨진 새로운 지혜를 일깨우기 위해 찾아온 것이랍니다."


레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작은 딱정벌레가 제 등을 적시는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듯, 자신 또한 이 절망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을 향해 다시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막의 미친 듯한 열기는 여전했지만, 탱고와 함께 걷는 레오의 눈빛에는 이제 물방울보다 더 투명한 생의 의지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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