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과의 전쟁, 레이저로 종전을 선언하다

by 김경훈

매일 아침, 거울 대신 손끝에 의지해 면도기를 든다.

이것은 미용이 아니다.

얼굴이라는 이름의 울퉁불퉁한 지형 위에서 펼쳐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바이벌이다.

날카로운 면도날과 민감한 피부 사이의 거리는 종이 한 장.

작은 실수는 어김없이 붉은 피와 함께 하루 종일 이어지는 따끔한 패배감으로 돌아왔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은 ‘젠틀맥스 프로’라는 이름의 최첨단 위성병기, 즉 레이저 제모 시술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이 끈질긴 게릴라 부대 같은 수염들이 순순히 백기를 들까.

3회 차까지도 녀석들은 완강히 저항했다.

하지만 4회 차를 지나며 전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성장 속도는 더뎌졌고, 밀도는 희미해졌다.

이제 아침의 전쟁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의례적인 순찰 정도뿐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단순히 털이 줄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진짜 승리는 ‘정신적 해방감’이었다.

더는 아침마다 턱선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조심스럽게 탐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기술은 나의 신체와 정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했던 신체 부위가 비로소 안전하고 편안한 ‘나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체화(Embodiment)의 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어쩌면 보이지 않기에 더욱 절실했던 선택의 결과일지 모른다.

매일의 작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대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더 근본적인 방법을 찾으려 한 것.

이처럼 기술을 통해 일상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은 수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직접 설계하는 프로액티브(proactive)한 행위이다.


결국 이 유쾌한 이별의 경험은 삶의 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작지만 반복되는 불편을 개선한다는 것은 단지 편리함을 넘어,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행위다.

보이지 않는 털과의 20년짜리 지루한 전쟁은 끝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끄럽고 단정한 오늘 아침의 평온함이다.

이 평화야말로, 그 어떤 트로피보다 값진 승리의 증거다.



비하인드 스토리


시술을 받기 전, 보보가 걱정스레 물었다.

“레이저 제모 엄청 아프다던데, 괜찮겠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이보시오, 나는 두통으로 벽에 머리를 박던 사람이오.

그깟 레이저 쯤이야.”

그리고 첫 시술 날.

타는 듯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악!”

시술이 끝나고, 간호사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남자분들 중에 제일 잘 참으시네요.”

그렇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통이 있고, 자만은 언제나 통증을 배가시킨다.

그날 이후, 병원에 갈 때는 늘 겸손을 챙겨간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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