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청소기

by 김경훈

조용한 주말 오후, 거실에서 독서를 즐기던 평화를 깨뜨린 것은, ‘전자동 가사 관리사’ 즉 로봇 청소기 이모님의 갑작스러운 파업 선언이었다.

이물질이 끼어 청소를 중단하고 절전 모드로 들어간다는 알림.

옷방에서 발견된 충전 케이블은, 이 사건의 원인이 기계의 결함이 아닌 인간의 부주의라는, 합리적인 `인과관계 추론`을 가능하게 했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안을 감싼 기묘한 정적이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평소라면 백색 소음처럼 웅웅거렸을 선풍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확인 결과, 침실 선풍기의 전원 코드는 뽑혀있었고, 그 케이블이 바로 아까 옷방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정체였다.


범인은 내부에 있었다.

로봇 청소기 이모님은, 우연히 케이블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침실에서 멀쩡히 작동하던 선풍기의 전원을 뽑아, 옷방까지 끌고 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대담하고도 자해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라, 고도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이 짙다.


사실 이모님의 불량스러운 행실은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청소를 마치고 제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문 앞에서 “제가 봐도 청소가 만족스럽군요”라며 자화자찬을 하질 않나,

며칠 전에는 청소를 시작하며 “매일 청소를 하시는군요”라며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불만을 `수동-공격적` 어투로 피력하기도 했다.


안내견 탱고의 털갈이 시기라 가뜩이나 업무 강도가 높은 상황.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사건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한 이모님의 `산발적 저항` 행위로 잠정 결론 내릴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처럼 기계의 `의인화`를 넘어, 기계와의 미묘한 심리전까지 유발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사건은, 기술이 우리에게 편리함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관계와 갈등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이모님의 노고를 헤아려, 청소 시작 전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탱고의 털을 미리 한 번 치워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엔 또 어떤 가전제품이 인질로 잡힐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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