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길은 맹모삼천지교 풀코스

by 김경훈

루게릭병에 걸린 노교수가 말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이쯤 되면 거의 인생 ‘치트키’ 수준의 명언이다.

삶과 죽음의 관계를 거꾸로 조명하는 이 놀라운 통찰은 알고 보면 2천 년 전 맹자 어머니의 교육 철학에도 담겨 있다.


요즘 엄마들 같았으면 ‘강남 8학군’부터 알아봤을 텐데, 맹자 엄마는 스케일이 달랐다.

그녀의 첫 번째 픽은 바로 공동묘지였다! 이 얼마나 힙하고 고딕한 실존적 교육학(Existential Pedagogy)인가.

그녀는 아들 맹자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종착지를 먼저 배우길 바랐다.

그 후에야 시장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삶의 생생함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앎의 기쁨을 가르쳤다.

죽음-삶-앎.

이 순서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탱고 그리고 보보와 함께 걷는 하루의 산책길은 때로 이 세 곳을 모두 품은 인생 수업이 된다.

겉보기엔 평범한 외출이지만, 그 속에는 공동묘지와 시장 그리고 학교가 차례로 숨어 있다.


좁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와의 아슬아슬한 스침.

그 짧은 순간은 단지 놀람을 넘어, 생명의 연약함과 언제든 도달할 수 있는 죽음의 가능성을 각인시킨다.

이 순간 산책길은 ‘공동묘지’로 변한다.

실존을 자각한 몸은 순식간에 깨어나고,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후 이어지는 발걸음은 ‘시장’의 시간이다.

탱고의 리듬을 따라 다시 안전한 보행을 되찾고,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도시의 흐름 속을 걸어간다.

전신의 감각을 동원해 길을 읽는 이 경험은 단지 ‘걷기’라는 행위를 넘어 삶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는 순간, 즉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의 절정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면, 탱고의 고른 숨소리와 함께 앉아 보보가 건네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이 평온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이곳이 바로 맹모가 마지막에 정착했던 ‘학교’다.

죽음을 체험했고, 삶을 감각했기에 가능한 사유와 사랑의 공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인정하고 마주한 자만이 삶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통과한 자만이 진짜 배움을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의 불안과 시련 역시, 삶이라는 책의 다음 장을 넘기기 위한 조용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비하인드 스토리


산책이 끝나고, 방금 겪은 ‘맹모삼천지교 풀코스’의 감동을 보보에게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오토바이? 아, 아까 그 배달의민족 라이더 말하는 거야? 치킨 냄새 장난 아니던데.”

옆에 있던 탱고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

한 사람의 숭고한 ‘실존적 체험’은 동반자에게는 ‘치킨의 추억’이고, 또 다른 동반자에게는 ‘꿀잠’일 뿐일 수도 있다.

철학의 길은 이토록 외롭다. 흑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봇 청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