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당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
타깃은 배움이 더디고 결석이 잦은 청년.
훈장은 ‘그릇이 작다’는 이유로 그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한다.
하지만 훈장은 곧 자신의 오판을 깨닫는다.
청년은 글공부 대신 늙고 병든 이웃의 물지게를 짊어지며 조용히 군자의 도리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독일 철학자 칸트가 구분했던 ‘이론 이성(Theoretical Reason)’과 ‘실천 이성(Practical Reason)’의 대결이다.
훈장은 책으로 배운 도(道)를 입에 담았지만, 삶으로는 실천하지 못했다.
그의 세계는 ‘이론’이다.
반면 청년은 ‘실천’의 세계를 살아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훈장은 구슬을 늘어놓았고, 청년은 그것을 꿰어 삶의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 구조는 놀랍도록 오늘의 현실과 닮았다.
특히 장애인의 삶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세상은 법과 제도를 통해 접근성과 포용의 구슬을 쌓아두었다.
‘장애인 인식 개선 캠페인’이라는 화려한 구슬, ‘정보 접근성 보장’이라는 번쩍이는 구슬.
서랍 속에는 구슬이 가득한데, 정작 목에 걸 목걸이는 없다.
이 얼마나 기막힌 컬렉션인가.
키오스크 앞에서, 경사로 없는 건물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서당 밖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했다.
실천은 생각이 아니라 책임을 질 준비에서 나온다고.
청년은 학문적 고찰이 아니라, 이웃을 외면할 수 없다는 소박한 책임감에서 움직였다.
오늘날 포용과 배려 역시 그러해야 한다.
디지털 키오스크를 설계하는 사람, 공공 건축물을 계획하는 건축가는 그저 ‘정책적 정답’을 고르는 기술자가 아니라, 타인의 현실에 책임질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차라리 자네가 나의 스승일세.”
이 한마디는 훈장의 겸손한 고백이자,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시대의 질문이다.
진짜 지혜는 교과서가 아니라, 매일 아침 문턱을 넘어야 하는 이들의 손과 발에 깃들어 있다.
그들의 삶은 꾀꼬리 같은 문장이 아니라, 오래된 등짐 같은 진실의 무게를 품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글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리를 짊어지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살아 있는 철학서이자 윤리 교과서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케아에서 책장 하나를 샀다.
전자 설명서를 정독하며, 조립의 모든 과정을 ‘이론 이성’으로 완벽히 파악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계획은 없었다.
그리고 ‘실천 이성’의 시간.
결과는? 두 시간의 사투 끝에, 완성된 것은 책장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비대칭 예술 작품이었다.
결국, 보보가 15분 만에 해체 후 재조립했다.
그렇다.
때로는 칸트의 철학보다, 육각 렌치를 제대로 돌리는 손목의 힘이 더 위대하다.
나의 ‘실천 이성’은 그날 장렬히 전사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