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등유 램프를 켤 때, 홀로 휘발유 엔진을 꿈꾸던 사내가 있었다.
헨리 포드.
시대의 상식으로는 터무니없는 몽상가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토머스 에디슨이 그 아이디어를 “현명하다”고 말해주었다.
그 한마디의 지지가 내연기관의 시대를 열었다.
위대한 발명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그것을 믿어주는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연구하는 일은 어쩌면 지금 시대에 휘발유 엔진을 설계하는 일과 닮아 있다.
대부분의 시스템은 비장애인의 감각 체계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시각 정보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종종 비효율적인 고집처럼 보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밀한 설계 도면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믿음이다.
“자네 생각대로 해보게.”
그 말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존재와 가능성 전체를 승인해주는 선언이다.
나에게 있어 그 역할을 해주는 이는 사랑하는 연인 보보다.
복잡한 학술 논문을 함께 읽으며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
“이 부분은 정말 흥미로운데.”
그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시선과 지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새로운 보조 기술을 익히느라 쩔쩔매는 모습을 볼 때면 그녀는 “처음인데 이 정도면 대단하지”라고 말한다.
그 따뜻한 문장 속에는 어떤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 믿음은 내 안의 자기 의심을 서서히 지우고,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조금씩 다시 불러온다.
안내견 탱고 역시 또 다른 에디슨이다.
그는 말을 하지 않지만 말보다 강한 확신을 준다.
처음 가보는 길 앞에서 머뭇거릴 때,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그 하네스에 실린 리듬은 ‘나를 따라오라’는 확고한 신호다.
그의 몸짓은 언어를 넘는 신뢰이자,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낯선 길도 뚫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 즉 체화된 신뢰(Embodied Trust)이다.
헨리 포드는 에디슨의 마지막 숨결을 유리병에 담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다소 기이하게 들리는 이 일화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준 존재에 대한 가장 순수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힘겨운 하루 끝에 곁을 지켜주는 보보의 목소리, 발밑에서 고르게 들려오는 탱고의 숨소리.
그 존재들 안에서 세상을 견딜 단서를 찾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에디슨이 되어주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지는 그 사람의 삶 전체에 지속적인 동력을 공급하는 배터리와도 같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넘어, 한 인간의 가능성을 ‘작동’시키는 마법이다.
우리가 믿어주는 그 순간, 누군가의 ‘휘발유 엔진’이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엔진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 보보에게 야심 차게 새로 구상한 논문 주제를 설명했다.
나의 ‘휘발유 엔진’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자기야,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
그렇다.
나의 위대한 에디슨은 때로, 인류의 진보보다 당장의 저녁 메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날, 휘발유 엔진의 시동은 잠시 꺼두고, 우리는 치킨을 시켰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