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부터 양배추, 브로콜리, 그리고 케일까지

by 김경훈

어느 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세 가지 채소를 마주했다.

하나는 묵직하고 단단한 구체의 양배추이다.

그 겹겹이 쌓인 잎의 매끈한 감촉은 잘 다듬어진 돌덩이와도 같다.

다른 하나는 거친 질감의 작은 나무들을 닮은 브로콜리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반항적으로 주름진 잎을 가진 질긴 케일이다.

촉각과 후각만으로 판단하건대, 이 셋은 전혀 다른 `계통`에서 온, 완전히 별개의 `존재자`들이다.


바로 그때, 곁에 있던 보보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지금 만지고 있는 이 세 가지 채소 모두, 사실은 ‘야생겨자’라는 이름의 보잘것없는 풀 하나에서 태어난, 한 집안의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공 선택`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진화`의 드라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야생겨자의 특정 부분만을 골라 수 세대에 걸쳐 집중적으로 `품종 개량`을 했다.

끝눈이 큰 개체들만 골라 교배하여 양배추를 만들었다.

꽃과 줄기가 발달한 것들만 선택하여 브로콜리를 탄생시켰다.

인간의 필요가 하나의 식물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 중에서 특정 경로만을 선택하고 강화한 것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인간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현대 사회 역시, 그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형질을 가지도록 강력한 `선택 압력`을 가한다.

예를 들어, ‘시각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은 우리 사회가 가장 높이 평가하고 보상하는 특성 중 하나이다.

교육 제도와 업무 환경 그리고 공공 시스템은 모두 이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이러한 `인공 선택` 속에서, 그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은 사회의 ‘양배추’처럼 단단하고 성공적인 모습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다른 잠재력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뛰어난 청각적 기억력이나, 깊이 있는 분석적 사고력 혹은 섬세한 공감 능력 같은 ‘곁눈’이나 ‘꽃과 줄기’에 해당하는 잠재력 등

사회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잡초’처럼 여겨지거나 도태되기 쉽다.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는 일은 바로 이 편향된 `인공 선택`에 저항하는 새로운 종류의 농부가 되는 것과 같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을 적용하여, 시각 중심의 밭이 아닌, 청각과 촉각으로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새로운 밭을 일구는 것이다.

모든 데이터라는 ‘야생겨자’ 속에서, 양배추뿐만 아니라 브로콜리와 케일의 가능성까지 모두 꽃피울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하지만 인공 선택의 힘은 언제나 `군비 경쟁`의 위험을 내포한다.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잡초나, 모든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악성 세균 `MRSA`의 등장은 우리의 통제 욕구가 낳은 괴물이다.

찰스 다윈이 `인공 선택`을 보고 `자연 선택`의 원리를 깨달았듯, 우리 역시 이 야생겨자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진정으로 풍요로운 밭은 단 하나의 우월한 품종만으로 채워진 밭이 아니다.

수많은 `유전적 다양성`이 공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열매 맺는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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