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사

by 김경훈

브라질이 원산지인 식물 미모사는

손만 닿아도 잎을 오므린다.

이 극적인 반응은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모습이지만, 실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정교한 생존 전략이다.

일시적으로 시든 것처럼 보이게 하여 천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

이처럼 겉보기에는 연약하고 예민하지만, 그 안에는 생존에 대한 치열한 계산과 강인한 자기 보존의 의지가 담겨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미모사처럼 끊임없는 외부 자극 속에서 신체와 마음을 방어하며 살아가는 일과 닮아 있다.

길을 걷는 중 갑자기 잡아당기는 손길, 설명 없는 안내, 경고 없이 울려 퍼지는 고성, 의도는 좋지만 준비되지 않은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이 미모사의 잎을 건드리는 곤충의 더듬이처럼 작동한다.

겉으로는 웃으며 넘기는 것 같지만, 그 순간 마음은 움츠러들고 주변에 대한 신뢰는 천천히 말라간다.


미모사의 잎이 다시 펴지기까지는 평균 15분에서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식물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꽤 긴 회복 시간이며, 무엇보다도 잎을 오므리고 다시 펴는 과정 자체가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낯선 접촉이나 불시에 들어오는 소음은 단지 순간의 놀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체적 반응을 넘어서 방향 감각을 재조정하고, 감정의 균형을 되찾고, 외부 세계에 대한 인지적 재정비가 필요한 복잡한 복원 과정을 거친다.

하루에 몇 번만 이런 일이 반복돼도, 그날 사용할 수 있는 인지적 에너지는 모두 소진된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말하듯, 미모사는 너무 자주 건드리면 스트레스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식물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과도한 간섭이나 선의를 빙자한 개입은 때로는 도움보다 해악이 더 크다.

불시에 다가오는 친절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점점 자신의 껍질 속으로 숨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따르는 비용이 한계를 초과했음을 뜻한다.

미모사의 시듦은 곧 한 인간이 사회적 관계에서 철수하는 신호일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배려는 상대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그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곁에 존재해주는 것이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주의 깊게 그 사람의 호흡을 읽고, 타이밍을 재고, 물리적 거리를 고려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예민한 존재들’을 위한 사회적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접근성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도움을 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보장하는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배려이다.


미모사는 세상의 모든 예민한 존재들을 위한 은유다.

그들이 안심하고, 두려움 없이 잎을 펼 수 있도록 하려면 먼저 건드리지 않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조용히 곁에 머물고, 기다려주며, 필요할 때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존재들이 세상 속으로 안전하게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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