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혁신하는 ‘비자발적 혁신가’입니다

by 김경훈

세계적인 기업들이 ‘창의력’을 외친다.

수억 원짜리 캠페인을 벌이고, 유명 컨설턴트를 모셔와 강의를 듣는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도 비싼 소동인가!

하지만 미안하지만, 진짜 창의력은 그런 회의실이 아니라, 삶의 가장 불편한 구석에서 태어난다.

시각장애인에게, 창의력은 고상한 구호가 아니라 밥 먹고 사는 문제, 즉 실존의 기술이다.


제1법칙: 제약은 창의력의 씨앗이다.

펩시는 필리핀의 ‘페트병 전등’을 예로 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처음 방문한 건물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 점자 없는 가전제품에서 전원 버튼을 찾는 일이 바로 그 ‘페트병 전등’ 프로젝트다.

소리의 반향으로 공간을 가늠하고 손끝의 감각으로 사물의 기능을 파악하는 기술.

이것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살아야 했기에, 반드시 알아내야 했기에 터득한 방식이다.


제2법칙: 공감에서 창의력이 시작된다.

주방용품 브랜드 옥소(OXO)의 디자이너는 노인 분장을 하고 관절 통증을 직접 경험한 후, 위에서 눈금을 볼 수 있는 측정컵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공감 디자인(Empathic Design)이다.

이쯤에서 터치스크린 키오스크를 떠올려보자.

그 기계를 설계한 디자이너가 단 하루만 눈을 감고 살아봤다면, 그 제품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진짜 공감은 동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제3법칙: 창의력은 구체적인 질문에서 나온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 “호텔에서 샴푸와 린스 병을 아침에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질문이 더 많은 전략을 낳는다.

그래서 탱고의 샴푸 통에는 언제나 고무줄이 감겨 있다.

이것은 과장된 기술도, 철학도 아니다.

그것은 제약 속에서 태어난 구체적인 삶의 기술이다.


이런 발명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시적인 창의력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비자발적 혁신가’들이 존재한다.

누구도 혁신가가 되려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불편을 마주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자신만의 해답을 만들어낸 사람들.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놓치고 있는 진짜 창의력은 바로 이 ‘삶의 불편함’이라는 조건 속에서 태어난다.


창의력은 정답을 잘 고르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틀린 세상에 “왜?”라고 묻는 올바른 질문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의 샴푸와 나의 샴푸를 구별하기 위해, 탱고의 샴푸 통에 고무줄을 감아놓았다.

완벽한 혁신이었다.

며칠 후, 보보가 욕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자기야! 혹시 탱고 샴푸 썼어? 머리에서… 멍멍이 냄새나!”

그렇다.

고무줄은 완벽했지만, 샤워하며 딴생각을 하던 나의 정신줄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냥 정신을 차리는 게 먼저다.

그날, 나는 보보로부터 강제 격리 조치를 당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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